고소영, 알고보니 귀여운 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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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돌아왔다. 영화 <이중간첩> 이후 CF에서만 볼 수 있었던 고소영이 4년 만에 공백을 깨고 공포 영화 <아파트>(토일렛픽쳐스·영화세상, 안병기 감독)로 컴백했다.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소영은 자신감에 차있었고, 1시간 30분 동안 모범정답 같은 대답 대신 솔직하고 진지한 화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작심하고 나온 듯한 인상이었다.
 
●쉴 때는 5분 대기조가 된다

아무래도 공백기간 뭘하고 지냈는지 궁금했다. 대중들에게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불안함은 없었을까.
 
"의외로 바빴어요. 원래 백수가 더 바쁜 거 모르세요? 출연작이 없었을 뿐이지 활동을 접은 건 아니었잖아요. CF도 계절 바뀔 때마다 재촬영을 했고, 작년은 말 많았던 드라마 <못된 사랑>(제작되지 않음) 때문에 첼로까지 배우느라 눈코뜰 새 없었죠. 공교롭게 데뷔할 때부터 한 작품 출연하면 꼭 1년씩은 쉬었어요. 그때마다 어학이나 요리 등 목표를 만들어 도전했기 때문에 늘 5분 대기조처럼 워밍업 상태였죠."
 
가족과 함께 떠난 일본 여행도 좋았고, 중학교 때 단짝 친구를 만나러 미국에도 가 항공사 마일리지가 제법 쌓였다는 고소영. 모처럼의 컴백인 만큼 데뷔 후 처음으로 팬 미팅도 갖는다.
 
"그동안 팬 미팅이란 걸 한번도 안 해봤는데 극장에서 <아파트>를 함께 보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팬 관리 참 소홀했거든요. 클릭 몇 번 하면 탈퇴할 수 있었을 텐데 끝까지 남아준 분들을 위해 이번에 뭔가 보여드리려고요."
 
그는 강풀 만화 원작인 <아파트>에서 우연히 연쇄 살인을 목격하고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는 회사원 세진으로 출연한다. 안병기 감독에게 시사회 당일 '무대 인사만 하고 도망갈래요'라고 말했을 만큼 떨리지만 돌아온 고소영에 쏟아질 갖가지 시선이 기대된다고도 했다.
 
●잊을 수 없는 해운대 소고기국밥
 

<아파트>는 공포에 스릴러가 밑반찬처럼 더해져 욕심이 났다고 했다.
 
"멜로는 촬영하면서 이 장면이 어떻게 나올 것이란 예상이 가능한데 반해 공포나 스릴러는 상대 배우도 없고 혼자 찍는 장면이 대부분이라 배우 입장에서 결과가 무척 궁금해지는 장르 같아요."
 
고소영은 스스로 첫 테이크에서 OK 컷을 많이 건지는 편이라고 자평했다. 그만큼 감정 몰입에 자신이 있다는 뜻. 장난기가 발동했을까.

그는 자신의 첫 액션 연기도 기대해달라며 웃었다.
"부산에서 유리창을 깨고 나가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물론 깨져도 다치지 않는 슈가 글래스였는데 감독님이 물건을 던져서 깨라고 하는 거에요. 그런데 상황이 어색할 것 같아 제가 직접 팔꿈치로 깨보겠다고 나섰어요. 촬영을 끝내고 나니까 팔에 온통 멍이 들었더라고요. 덕분에 현장에서 박수는 좀 받았죠."
 
놀이공원에서 CF 촬영 때문에 청룡열차를 하루에 17번이나 타본 적이 있다는 고소영은 "겁이 많지만 호기심도 그만큼 왕성해 바닷가에 가면 꼭 제트스키를 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아버지 고향이 부산인데 마침 보름간 부산 촬영이 잡혀서 맛집 리스트를 만들어 갔어요. 음식점을 순례하며 평점도 매기고. 해운대 근처에 있는 2500원짜리 소고기 국밥과 양곱창이 가장 맛있었어요."
 
●달밤의 배드민턴으로 체중 관리
 
여배우들을 인터뷰하면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공인된 거짓말을 자주 듣게 된다. 하지만 고소영은 달랐다. 칼로리 소모를 위해 날마다 달밤에 배드민턴을 쳤단다.
 
"아예 야광 셔틀콕을 사서 30분 정도 격렬하게 치면 땀이 비오듯 쏟아져요. 노폐물 빠지니까 몸이 개운해지고, 살도 빠지고, 또 잠까지 잘 오니 일석 삼조였죠."
 
옆에 있던 매니저가 "한번은 셔틀콕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50번 연속 치는 기록에 도전했다가 죽는 줄 알았다"며 "소영씨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바람에 번갈아 가면서 라켓을 잡은 두 매니저가 녹초가 됐다. 박지성 부럽지 않은 폐활량의 소유자"라고 거들었다.
 
영화 촬영 초반엔 감독과 작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단다. 주로 신인 연기자들과 작업했던 안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고소영의 자존심을 살짝 건드렸던 것.
 
"하나부터 열까지 기계적인 연기를 주문하실 때가 있어서 처음엔 좀 생소했어요. 심지어 눈 깜빡이는 횟수까지 정해주시더라고요. 속으로 개그 프로그램에 나온 '이건 아니잖아~'를 수없이 되뇌이다가 어느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그런 방식이 몸에 굳어서 그런 거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마음에 쌓아놓고 사는 성격이 아닌지라…."
 
●"언어 폭력 때문에 인터넷 끊었어요"
 

<아파트>는 대사 보다 미세한 떨림과 눈빛 등 표정 연기가 더 중요하다 보니 테스트나 리허설 없이 곧장 촬영에 들어간 경우가 많았다. 암기나 동선 파악 보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감정에 충실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콘티북도 없었어요. 깜짝 놀라고 비명 지르는 장면이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다음날 우울한 표정 신이 있으면 전날부터 온갖 불행한 상상을 하며 마인드콘트롤을 해야 했죠. 즉흥적인 연기가 많아 슛 들어가기 전까진 저도 제가 어떤 연기를 할 지 모를 때가 많았어요."
 
단독 주택에서 가족과 다섯마리의 개를 키우며 사는 고소영은 "<아파트>는 현대인의 극단적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꼬집는 메시지도 담겨있다"며 "음향 효과에 의지하는 공포물이 아닌 만큼 드라마를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도회적이고 깐깐해 보이지만 고소영은 "알고 보면 코믹하고 가벼운 푼수 기질도 있으며 때론 엽기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며 웃었다. 집에서도 막내, 각종 모임에서도 막내라 애교도 철철 넘친다고.
 
"가끔 스타크래프트 하며 기지를 만들지만 인터넷은 도를 넘은 언어 폭력과 무책임한 댓글 때문에 거의 접속하지 않아요.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를 해칠 수 있는 것처럼 네티즌도 책임질 수 있는 얘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론 실명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범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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