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각 정국에 내각제 핑퐁|민정·공화 왜 개헌론 들먹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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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헌 논의가 점차 활발해져 수면위로 모습을 나타내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재순 국회의장이 외유 중 스페인에서 갑자기 간선제 대통령중심제를 제기했는가하면 박준규 민정당 대표의 내각제 발언을 「시기상조」라고 비판했던 김종필 공화당 총재도 정계 개편을 전망하면서 내각제를 다시 시사해 개헌 논의를 본격화시키려는 시도가 가시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민정당은 『대통령간선제』를 주장한 김재순 국회의장의 「마드리드 발언」에 대해 『그의 오래된 지론』이라며 일단 사견으로 돌리면서도 개헌 논의 가산발적으로 나마 계속 촉발되는 점을 기대하는 표정들.
박준규 대표는 12일 『김 의장이 2, 3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주장해온 지론』이라며 당 차원에서 검토할 대상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고 김윤환 총무도 『대통령간선제는 그분의 지론』임을 지적하면서 그러나 국민이 과연 납득하겠느냐』고 일단 부정적 반응.
김 총무는 특히 『대통령간선제는 87년 상반기에 호헌·개헌을 논의할 때 일부에서 제기됐었으나 6·29를 통한 직선제 수용과 함께 이미 폐기 처분된 것』이라고 설명, 개헌 논의가 간선제로 발전될 가능성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박 대표의 「내각제 검토」 발언에 이어 김 의장이 다시 「대통령간선제」를 들고 나오는 등 중량감 있는 여권 고위 인사들이 개헌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결코 그냥 흘려보내는 얘기가 아닐 것』이라는 관측들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박 대표의 내각제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물론 당 일부에서도 『협의된 발언이 아니다』『지금 내각제 문제를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고 일축 (?)했고, 김 의장의 발언 역 시 『사견에 불과하다』며 논외로 돌리고 있으나 사견임을 전제로 한 「치고 달리는」 방식을 통해 개헌 논의를 가속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개헌과 같은 껄끄럽고 미묘한 문제를 당론 등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통해 논의하는 것보다 「중량감 있는」 인사의 사견 형식을 통해 발화시키는 우회적 수법을 활용하려는 측면도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김 의장의 이번 마드리드 발언은 실현성이 있거나 추진 의사가 있어서라기보다 단지 점차 개헌 논의를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암묵적으로 의도한 「청부적 요소」가 없지 않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민정당은 개헌 논의에 대해서는 정부·여당이 처음부터 직접 전면에 나서기보다 야당 측에서 먼저 제기하고 그에 따르는 방식을 취하려하고 있는 만큼 김 의장의 발언과 같은 사견이 축적돼 개헌 논의 개화의 도화선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어 그 배경을 예의 주시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내각제 개헌 추진 의사를 밝혀온 공화당은 지난번 박준규 민정당 대표의 내각제 개헌 발언에 이어 김재순 국회의장의 대통령간선제 발언이 나오는데 대해 『결국 내각제로 가야할것』이라고 물꼬를 돌리려는 기색.
김 의장의 발언에 대해 최각규 사무총장은 12일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한다면 국회가 책임지는 것인데 그런 내용이라면 내각제를 선택하는 것이 논리적인 주장』이라고 지적하고『단순히 사견에 불과한 것으로 고려할 가치가 없다』 고 일축. 한 당직자는 지난번 박준규 대표 발언을 지적하면서 『민정당의 대세는 내각제로 가려는 것일 것』이라고 전망.
공화당은 따라서 민정당에서 박 대표와 김 의장의 발언이 나오는 맥락에 대해 『직선 대통령 제도로는 어차피 집권이 힘들다는 판단 하에서 몇가지 운을 띄워 놓으려는 것 아니냐』고 분석하고 내각제로 여론을 유도키 위한 조심스런 몸짓.
김종필 총재도 이 같은 맥락에서 11일 부여에서 내각제 시사 발언. 그는 『국민이 택하는 정당이 정권을 맡아 나가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김 총재의 이날 발언은 공화당의 기존 입장이기도 하나 그 동안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고 해온 데에서 약간의 변화를 보인게 아니냐는 평가.
개헌 논의가 마치 민정·공화당 합작처럼 잇달아 나오자 평민당과 민주당의 반응이 약간씩 달라 주목. 평민당은 김재순 국회의장의 간선제 발언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일축하면서도 김종필 공화당 총재의 내각제 발언에 대해서는 『지금 얘기할 문제가 아니다』는 반응.
12일의 총재단 회의는 『김 의장이 국외에서 그같이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잘못된 작태』라고 규정지었는데 한 고위 당직자는 『김 의장의 발언은 민정당을 움직이는 권력의 핵과는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의 얘기』라고 애써 격하. 그러면서도 평민당은 김 의장 발언의 배경을 알아보느라 촉각을 세우고 있는데 김 의장의 발언을 ▲의회 내 보수 연합을 통한 차기 집권 포석용 ▲내각제 도출을 위한 협상용 방안 제시 ▲중평 불실시 비판 여론 희석용 등 세가지 방향에서 가능성을 분석.
때문에 평민당은 때를 맞춰 튀어나온 김 공화 총재 발언과 연계성이 있는게 아닌지 배경에 관심. 김영삼 총재가 집요하게 또 한번 대권을 겨냥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민주당 측은 개헌 논의에 대해 『시국의 초점을 돌리려는 호도책』이라고 외면. 12일 열린 확대 간부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됐지만 참석자들 거의가 언급조차 않겠다는 뜻을 표했고 강삼재 대변인도 『잠꼬대 같은 소리』라며 한마디로 일축.
김동영 총재 대행은 『5공 청산이 안된 상태에서는 어떠한 논의도 있을 수 없다』고 분명한 태도를 밝혔는데 공화당 등이 만약 여권과 동조의 움직임을 보일 경우 『독자 노선을 걷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수용치 않을 것』이라고 단호한 태도. <고도원·김용일 기자.<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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