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특파원 「피의 거리」 현장 르포|군·시위대 일진일퇴…팽팽한 긴장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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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화의 광장에서 피의 학살 현장으로 변한 천안문 광장의 5일은 광장을 점거한 계엄군과 광장 주변도로를 에워싼 학생·시민들과의 일진일퇴 속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4일 새벽 천안문 광장을 피로 씻은 계엄군들은 광장의 쓰레기들을 정리한 대신 학생들의 숙소로 쓰였던 임시 텐트자리에 탱크와 장갑차 수십 대를 배치했으며 시체를 운송하는 것으로 보이는 헬리콥터가 쉴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천안문 광장에는 탱크와 장갑차 외에도 미사일이 배치됐으며 이는 공수부대의 반격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는 정통한 소식통의 얘기는 천안문 일대의 계엄군들의 임무가 학생·시민들의 반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군 내부의 충돌에 대비한 것이라는 시사를 준다.
오후 4시 천안문 광장 동쪽 동장안가 대로에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몰려 때로 함성을 지르며 천안문을 향해 밀려갈 때마다 2열로 도열한 계엄군들이 자동소총을 발포했다.
이러한 시민과 계엄군과의 일진일퇴가 몇 차례 계속됐으나 시민들은 감히 돌진하지는 못했으며 계엄군들도 이들을 향해 정면으로 조준 사격은 하지 않았다.
천안문으로 향하는 동장안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시민들이 설치했던 장애물들이 간밤의 탱크와 장갑차 바퀴에 으스러져 있고 천안문에서 동쪽으로 4km지점인 건국문 다리 근처에서는 불타는 군 트럭에서 내뿜는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건국문 다리 양편으로는 군 트럭 10여대에 탄 장병들이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경비병의 호위 속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일부 시민들은 경비병에게 다가가 사태의 진상을 설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건국문 다리를 건너자 장안가에 이르는 도로 어귀마다 까맣게 불타 철골을 드러낸 버스와 무궤도 전차들이 장안가를 막고 있으며 유리파편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장안가 중심분리선으로 사용됐던 시멘트와 철근으로된 가드레일들은 하나도 성한 것 없이 도로차단용으로 사용했으나 이 또한 탱크와 장갑차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1주일 전까지 만해도『이붕 사퇴』 『학생 여러분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대형 구호를 써 붙였던 국무원(내각)의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은 이들 구호가 사라지고 침묵이 흐르고 있다.
장안가 대로에는 탱크와 장갑차가 지나간 흔적이 깊게 파여 있었고 길 양편의 관공서는 모두 문을 닫았고 상점은 철시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탄 시민들이 조심스럽게 천안문 등을 향해 오가는 모습이 계속됐다.
천안문 광장에서 불과 3백m쯤 떨어진 북경호텔에는 「반부르좌 자유화 기치를 선명히」 「4개 기본노선, 개혁 개방 견지」등을 쓴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으나 호텔투숙객들이 대부분 안전지대를 찾아 이동했고 호텔내 식당·코피숍·상점·여행사까지 완전히 문을 닫아 유령의 건물처럼 으스스한 느낌까지 준다.
그러나 불안한 침묵이 흐르던 장안가에는 이날 오후 9시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계엄군들이 전투대형으로 행렬을한 뒤 도로 한복판을 따라 천안문 쪽으로 행진하면서 군중들이 보일때마다 공포를 발사, 총성이 계속됐다.
오후 10시 그 동안 건국문 옆에 포진했던 계엄군들이 어느새 탱크와 장갑차 10여대를 건국문 다리 위에 전진 배치하고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천안문 일대를 경비하던 계엄군들의 전진배치가 시작된 것이며 이들은 기자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약5백m까지 전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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