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념을 하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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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온 겨레가 겸허히 옷깃을 여며야 할 날이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선열들의 희생정신에 자신을 비춰보며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입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 현충일을 맞아 우리가 추모하는 영령들. 그들은 조국광복과 민족해방을 위해 순국한 독립투사,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공산침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싸운 6·25와 월남전의 전몰 장병들,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싸운 4월 혁명 희생자들이다.
순국선열들의 희생의 대가로 우리는 오늘 독립과 자유, 민주발전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비록 분단된 상태에서나마 주권국민으로서 세계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 정치체제도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도전을 극복하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모두가 순국열사들의 귀중한 유산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해 어느 정도 보훈을 해나가고 있는가. 보훈 체계는 크게 개선되고 사업도 활발히 전개돼 왔다. 그러나 부상용사들과 유가족들은 아직도 어려운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수십 년간 받아온 생계보조비를 모두 합쳐도 1천만 원이 안 되는 가구가 대부분이다. 오늘날 특정정권이나 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보상금이 천만원대 또는 억원대로 논의되는 것에 비하면 너무 섭섭하다. 오늘의 경제성장은 따지고 보면 선열들이 만들어준 국가여건의 산물이다. 보다 실질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 자신에 있다. 오늘 우리가 독립을 유지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내부적 갈등과 분열을 극복치 못하고 있다.
애국열사들이 지켜준 자유를 이기적인 방종과 대립의 계기로 삼아 오히려 내적 단결이 저해돼 왔다.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현충의 의미는 선열들이 보여준 단결과 희생의 정신을 실천하는데 있다. 3·1 만세를 외치고 4·19 시위를 벌인 그들에겐 분열과 이기심이 있을 수 없었다.
오늘 우리는 모두가 국기를 달고 선열들의 영령 앞에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선열들이 물려준 자유와 독립을 지키지 못하거나 단결과 희생의 정신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런 의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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