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의 휴먼골프 <12> 가수 조용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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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년 쳤습니다. 그래도 늘 어려운 게 골프죠." 얼마 전 가수 조용필씨와 안양 베네스트CC에서 함께 라운드했다. 나에게 조용필의 이미지는 '작은 거인', 그리고 '절대 고독'이다. 그의 대표곡들은 대부분 가슴속 깊은 곳까지 밀려오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특히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 겨울의 찻집' '허공' '킬리만자로의 눈' 등은 절대 고독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20대 청년 시절부터 그의 노래를 수없이 듣고 따라 부른 골수팬이다.

조용필씨의 골프 스타일은 한마디로 '단정한 샷+예리한 퍼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담한 체구인데 클럽을 늘 똑같은 리듬과 템포로 끝까지 뻗어주기 때문에 드라이브샷 거리도 만만치 않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230~240야드를 가볍게 날렸다. 골프를 잘하려면 노래방을 가라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골프 샷은 리듬과 템포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인데 나는 조용필씨의 샷을 보면서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실수가 거의 없다. 흔히 말하는 좌탄, 우탄이란 용어는 그의 사전에는 없는 듯싶었다. 퍼팅은 정교함 그 자체였다. 안양 베네스트의 빠른 그린에서도 3퍼팅이 한 차례도 없었다.

골프 매너도 그의 샷처럼 깔끔했다. 말도 많이 하지 않고, 항상 빙그레 웃는다. 옆사람을 배려하면서도 그만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평소 느낌 그대로 필드에서도 '작은 거인'이다.

그는 아웃 코스 5번, 6번 홀에서 연달아 버디를 하면서 39타를 쳤고 인 코스에서는 42타를 쳤다. 안양 베네스트에서 81타를 친다면 다른 골프장에서는 대부분 70대를 칠 수 있는 실력이다.

안양 베네스트에서 점수가 잘 안 나오는 이유는 세 가지다. ▶코스가 길고▶그린 앞에 벙커가 위협적이고▶그린이 빠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침착하고 예민한 계산을 해야 한다.

"골프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취미죠. 취미가 있어야 삶의 균형이 잡히잖아요."

여가경영학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Work & Life Balance)이라는 이론을 강조하는데 일에 빠진 사람일수록 여가가 더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평생 노래에만 빠져 있던 조용필씨야말로 누구보다 더 삶의 균형이 필요할 것이다.

"원래 인기인들이 더 외로움을 타는 거 아닙니까? 유명인이라 아무나 만날 수도 없고 아무 곳이나 갈 수도 없는데 골프장이야말로 조용히 외로움을 달래기 좋은 곳이죠." 조용필씨와 자주 골프를 하는 M회장의 해석이다.

이날 그늘집에서 뒤 팀에서 플레이하던 탤런트 한석규씨 일행과 만났다. 한씨는 대뜸 볼펜과 메모지를 들고 조용필씨에게 다가오더니 사인을 부탁했다.

"아니, 사인은 내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조 선배님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데 오늘은 꼭 사인을 받아야겠습니다."

M회장에게 다시 물어봤다.

"인기인들이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아, 글쎄 다들 마음을 달래려고 친다니까요."

이날 나는 근래 최악의 스코어인 87타를 쳤다. 원인은 거의 모든 벙커에 출입했기 때문이다.

"11번 홀 빼고 벙커에 개근하셨네요." 캐디가 이런 농담까지 한다.(11번 홀에는 벙커가 없다)

라운드 후에 소감을 묻는 동반자들에게 나는 조용필씨의 노래 한 구절을 들려주고 말았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오늘의 원 포인트 레슨=골프는 외로움을 달래준다.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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