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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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벌 봐주기 근절해야 합니다” - 前 두산 회장 구속을 외치는 김창근 씨

두산그룹의 일명 ‘형제의 난’ 때였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은 각종 비자금과 분식 회계로 약 320억원을 횡령했지만 검찰은 박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김창근(51) 씨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으로 사건을 일단락 했다”며 “몇 억만 횡령해도 징역에 처해지는 상황에서 누가 봐도 엄연한 ‘재벌 봐주기 식’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작년 내내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그는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현재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 중이고, 김 씨는 오늘도 ‘구속’을 외치며 여전히 청와대 앞을 지킨다.

그는 “박 회장의 만행은 횡령에 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0년 12월, 공기업의 민영화 바람으로 두산중공업은 한국중공업을 인수했다. 김 씨는 “두산은 이에 대항하는 노동조합을 탄압하며 18명을 해고하고 20여 명을 구속하는 등 150여 명을 징계했다”고 말했다. 김 씨도 이 때 징계를 받아 직장을 잃었다. 그 후, 해고된 18명 중 14명은 여러 단계로 복직되었고, 현재 남은 해고자는 4명뿐이라고 한다. 이들은 창원에서 상경해 현재 교대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일주일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1인 시위를 하는데, 주로 오전에는 법원, 오후에는 청와대로 향한다.

시위가 길어지자 정신적, 육체적 뿐만 아니라 금전적으로까지 힘들어졌다. 그나마 김 씨는 “노동조합에서 일상생활을 할 정도의 생계지원이 되기 때문에 낫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생계는 무난히 해결하지만 대학교 3학년인 딸과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의 교육비가 부담”이라고 털어놨다. 그래도 김 씨는 “생계 보조를 받으면서 어렵다고 하면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염치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상경 투쟁할 때는 교통비까지 노조에서 지급된다”고 귀띔했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김창근 씨. [사진 = 유은영]

“대한민국의 사법정의를 똑바로 세워야 한다”며 김 씨는 힘 있는 자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한국 사회를 안타까워했다. 그가 꾸준히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 그는 “정의가 바로 세워질 때까지 청와대 외에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시위를 할 생각”이라 말했다. “청와대에서 시위를 하는 건 가장 큰 효과를 내기 위함”이라면서 “혹시라도 대통령이 나서주길 바란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오늘도 그는 시위를 끝내고 어둑해질 무렵, 동료들을 만나서 소주 한 잔에 쓰라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영등포로 향한다.

#2 “부당한 노동 행위, 대통령이 중재 바랍니다” - 정리해고 철회 외치는 김영만 씨

작년 초만 해도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플라스틱 원료 제조를 하던 김영만(39) 씨는 작년 2월 회사로부터 부당하게 해고됐다. 그 후, 김 씨는 억울한 사연을 적은 큰 피켓을 들고 청와대 앞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그는 “해고 이유는 단지, 경영상의 이유였다”고 입을 열었다. 당시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 된 인원은 78명. 이 중 80~90%가 전직 노동조합 간부라고 한다. “회사의 주목적은 노동조합의 와해”라며 김 씨는 부당한 정리해고를 설명했다. 나름대로 기준 점수를 매기고 점수가 낮은 인력을 해고했다는 게 회사 측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회사는 그 기준을 제시하라는 노조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며 “노래방에서 도우미하고 어울리지 못한다고 해고되는 경우도 있다”고 예를 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김 씨는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꾸려는 시점에서 걸림돌인 노조를 와해하려한다”고 주장했다.

본격적으로 청와대에서 ‘상경시위’를 한 것은 최근 들어서다. 그는 “15명이 1시간 씩 교대로 청와대를 지키고 성북동 이웅렬 코오롱 회장 저택과 코오롱 본사, 구미 공장 등에서 시위를 벌인다”고 말했다. 회사와 교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에 구미 공장 고압 철탑에서 시위를 하자 검찰이 나서서 대화를 중재했다. 그러나 그는 “일주일에 2회 정도 투쟁 경비를 대주는 걸로 마무리 지으려는 회사 측의 태도에 더욱 화가 났다”며 “돈 몇 푼 쥐어주고 끝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리해고 후 김 씨는 노동조합 위원장에 당선됐다. 그는 “시청과 노동부가 인정한 자리였지만 회사만은 인정하지 않고 대화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며 “회사는 용역 깡패를 동원해서 공장 현장 출입을 차단했다”고 말했다. 노동부에 항의해도 반응은 미지근했다. 노조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이 회장 집에 들어가자 주거침입죄로 구속까지 당하는 설움을 겪었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김영만 씨. [사진 = 유은영]

시위를 시작했을 당시,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 부인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도 생각해야 한다며 다른 일을 해 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김 씨가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제는 명예회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큰 버팀목이다. 처음에는 무조건 반대하던 두 아들도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시위가 길어지자 생계를 유지해 나가기가 힘들어 졌다. 초창기 때는 모아 놓은 돈과 상해보험, 노후대책 보험 등을 해약하면서 버텼다. 하지만 이후, 집에서 살림만 하던 부인은 돈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서비스업을 시작해야만 했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두 아들의 교육비가 부담이었다. 그는 “결국 큰 아들은 태권도를 그만뒀고, 작은 아들은 전 과목 학원을 그만둬야 했다”고 말했다. 현재 두 아들은 꼭 필요한 영어 학원만 다니는 형편이다. “이제는 암 보험도 곧 해약할까 고민 중”이라는 것이 김 씨의 상황이다.

김씨가 ‘정리 해고 철회’를 외친 것도 오늘로 440일 째다. “1인 시위로 해결될 건 아니다”며 “앞으로 본격적인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복직될 때까지 투쟁은 계속 된다”며 굳은 의지를 다졌다.

취재 : 이해완 (아주대 미디어학부 4년), 최중혁 (성균관대 경영학과 3년), 유은영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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