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둔화에 깜짝 놀란 중국, 지준율 내려 돈줄 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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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호 05면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의 애플 스토어. 실적 부진으로 애플 주가는 이날 9% 이상 떨어졌다. [베이징 EPA=연합뉴스]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의 애플 스토어. 실적 부진으로 애플 주가는 이날 9% 이상 떨어졌다. [베이징 EPA=연합뉴스]

중국이 돈줄을 다시 풀었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PBOC)은 “시중은행의 지급준비율(지준율)을 1월에 모두 1%포인트(100bp) 내린다”고 4일 발표했다. 인하 기준일은 이달 15일과 25일이다. PBOC는 “15일 0.5%포인트를 내린 뒤 25일에 다시 0.5%포인트를 인하한다”고 밝혔다. PBOC는 별도 성명에서 “이달 지준율 인하로 통화공급이 8000억 위안(약 131조2000억원)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15·25일 두 차례 1%P 내리기로 #시중 자금 131조원 늘어나는 효과 #소매판매 증가율 2008년 후 최저 #한국, 고급 소비재 수출에 악영향

‘그림자 금융’에 돈 대던 중국 중산층 타격

공격적인 통화정책 완화다. PBOC는 지난 한 해 동안 세 차례나 지준율을 내렸다. 이번 인하는 지난해 10월 이후 두 달여 만이다. 게다가 단 열흘 기간을 두고 지준율을 0.5%포인트씩 두 차례 내리기는 200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단기적으로는 설(춘절)을 맞아 돈 가뭄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2019년 설(춘절) 연휴를 앞두고 시중 자금 수요가 급증했다”며 “그 규모가 4조3000억 위안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 제기됐다”고 전했다.

실물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목적도 한몫했다. 최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최근 경제정책 책임자들과 회의를 한 뒤 실물 경제의 둔화를 언급하며 통화정책 완화를 강하게 시사했다. 실제 중국 경제상황은 녹록지 않다. 영국 경제분석회사인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3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중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이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다”며 “중국인들의 소비 위축이 낳을 또 다른 충격파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중국 소매판매는 지난해 11월 8.1%(전년 동기 대비) 증가에 그쳤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무역전쟁 여파 외에 서방 경제분석가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주택시장 부진이다. 최근 20년 동안 유지돼 온 ‘집값 상승→그림자 금융 부문의 수익률 증가→중간 소득층 소득 증가’로 이어진 선순환이 끝날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 금융시장은 중국 정부의 관리·감독이 미치지 않은 곳이다. 정규 시장에서 기대하기 힘든 고수익을 노린 자금이 몰려들었다. 그 바람에 중국 정부가 돈줄을 죄는데도 부동산 개발에 자금이 계속 공급될 수 있었다.

지난해 그림자 금융시장 여기저기에서 피로 증상이 이미 나타났다. 중국 정부의 단속이 엄격해졌을 뿐 아니라 경기 둔화로 자금유입마저 줄었다. 그 바람에 중국 뮤추얼펀드 청산이 2018년 급증했다. 그림자 금융 시장의 수익률이 곤두박질한 탓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뮤추얼펀드 청산 급증은 중국 중간 소득층의 금융소득 감소를 시사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림자 금융의 이상 증상이 소비지출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경제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2.6%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8.4%)보다 낮다. 심지어 동남아 평균(56.6%)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처럼 소비 위축이 중국 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의 거대 인구 덕분에 소비시장 규모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이런 중국 소비시장을 겨냥해 글로벌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소비재 수출을 늘려 왔다.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대중 수출 가운데 소비재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약 20%까지 늘었다. 한국무역협회는 “의약품과 패션, 유아용품 가운데 프리미엄 제품 판매가 20% 이상 증가세를 보였다”고 최근 밝혔다. 한국의 대중국 소비재 수출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충격에서 막 벗어나 본격적인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한 셈이다. 이런 때 중국인들의 소비 위축은 애플뿐 아니라 한국 기업에도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애플 실적 악화로 글로벌 증시 출렁

애플의 피해는 구체화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은 “2019년 회계연도 1분기(2018년 10~12월) 매출이 840억 달러(약 94조9000억원)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3일 발표했다. 중국에서 아이폰 등의 판매가 부진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 바람에 이날 아시아 증시를 시작으로 뉴욕 증시까지 급락했다. 지난해 11월에 이은 2차 애플 쇼크였다.

다만 하루 뒤인 4일 서울 증시는 오전 한때 하락세를 보이다 오후 들어 반등에 성공했다. 이날 코스피는 16.55(0.83%) 오른 2010.25로, 코스닥은 7.47(1.14%) 오른 664.49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는 하루 만에 2000선을 회복했다. 중국 상하이지수 역시 2% 남짓 올랐다. 서울과 상하이 증시가 뉴욕 증시보다 앞서 애플 충격을 소화했기 때문이다. 또 7~8일에 베이징에서 열릴 미·중 차관급 무역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했다. 다만 새해 연휴를 마치고 4일 개장한 도쿄 증시의 닛케이는 2.26% 떨어졌다. 일본 증시가 뒤늦게 애플 쇼크를 반영한 탓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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