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반체제 운동」이 움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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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코너미스트지=본사특약】평양의 지하철역은 이곳의 다른 공공건물과 마찬가지로 먼지 한점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인민의 위대한 태양」이라 불리는 김일성의 나라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이 지하철역의 벽면에 최근 스프레이 페인트로 쓴 반체제 구호가 등장해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갈은 신성모독을 누가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반체제 행위가 외부방문객에 의해 목격되지 않았다면 없었던 일로 되어 버렸을 것은 분명.
북한에도 반체제가 있다. 그러나 누가 반체제인지는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나라인 북한에서는 미궁에 속할 뿐이다.
그러나 누구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반체제가 스프레이 깡통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스프레이 낙서 이외에도 반체제 행위에 관한 소문들이 평양에 떠돌고 있다.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소문 가운데 하나는 86년과 87년에 김일성의 목숨을 노리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두차례 일어난 열차폭발 사고는 반체제 활동으로 발생한 것이며 여러 차례에 걸쳐 공장에서 파업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과 같은 강력한 통제 체제안에서 반체제 현상을 억제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북한이 이보다 더 우려하는 것은 우방 중국과 소련의 지지에 더 이상 기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대북한 관계에 변화조짐이 나타난 것은 지난79년「덩샤오핑」(등소평)의 평양방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등은 북한지도층에게 20m높이의 김일성 동상에 대해 좋지 않게 얘기했었다.
북한 쪽에서는 지난 2월「부시」미 대통령이 북경을 방문하자 중국을「미국의 괴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전쟁 당시 중국은 1백만 병력을 보내 북한을 지원했다. 그러나 북한의 전쟁 기념관에서조차 그런 사실이 없었던 것처럼 돼 있다. 중국과 소련은 북한에 대해 지금까지 경제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지만 김일성의 거창한 건설공사에 대한 우려가 늘고 있다.
현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만 들어도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농촌을 연결해 남으로 뚫어놓은 4차선 도로, 세계 최대라고 자랑하는 객실 3천개 규모의 호텔, 15만명 수용 규모의 축구 경기장 등이 있다. 이러한 시설들이 오는 7월 평양의 세계 청년 학생축전에 참가하는 수만명의 외국 방문객들에게 감동을 줄 것은 분명하지만 경제적 타당성은 전혀 없는 것들이다.
중국이나 소련이 김일성을 설득해서 개혁에 나서도록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자신의 체제가 이미 완벽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논쟁을 벌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중소 양국 모두 후계자 김정일 문제에 부닥치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지난 3년동안 북한의 신문·방송들은 김정일 찬양에 목청을 높여왔다.
북한에서 참을성이 가장 많은 사람조차도「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지도자」인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서만 천재로 불려지고 있는 47세의 작달막하고 안경을 쓴「친애하는 지도자」김정일의 얘기를 들을 때면 역정을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정일의 후계작업은 북한 고위 관리들에 의해 여러 차례 반대에 부닥쳐 왔다.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도 그런 반대자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북한 왕조는 90년대의 도전을 맞는데 적합한 체제가 아니다. 북한 당국은 북한이 남한 및 다른 국가들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는 한 남북한의 경제적 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교차승인 움직임은 언제나처럼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최근 북한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가 이같은 제안을 내놓았을 때 단호히 거절했다.
정부관리들도 북한이 고립된 사실에 대한 논쟁을 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가 투자한 요구르트 공장과 프랑스와의 합작인 호텔을 예로 든다. 또 몇몇 홍콩의 의류업자들이 북한에 공장을 차렸는데 임금이 중국보다도 싼 것이 큰 매력이라고 밝힌다. 봉제 공장 노동자의 한달 임금은 55원으로 공식환율로 치면 25달러, 암달러 시세로 치면 1달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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