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강적"라디오스타' 또 버디무비 주연 박·중·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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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진=김성룡 기자

미드필더의 활약이 없는 현대축구를 상상하기 어렵듯, 허리가 없는 조직이란 신통치 않다. 예컨대 안성기와 천정명 같은, 세대가 다른 배우를 연결할 것이 말줄임표뿐이라면 참으로 심심할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박중훈(40.사진)은 충무로의 허리 같은 배우다.

영화'강적'(감독 조민호.22일 개봉)에서는 일 생각이 도통 없는 형사 역할을 맡아 살인누명을 쓴 탈옥수 천정명과 호흡을 맞췄고, '라디오 스타'(감독 이준익.추석 개봉 예정)에서는 퇴물 록가수로 변신해 매니저 역의 안성기와 한창 촬영 중이다. 공교롭게도 천정명은 그보다 14살 손아래고, 안성기는 14살 손위다. 고답적인 질문, 선후배 노릇의 비교부터 물었다.

"후배 때는 몸이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어요. 제가 처음 영화를 했을 때는 신인은 앉을 의자도 없는 분위기였어요. 선배가 되고 보니 몸은 편한데 마음은 반대더군요. 후배가 말이 없으면 과묵하다고 칭찬하고, 말이 많으면 재미있다고 좋아하는 반면 선배가 말이 없으면 부담스러워하고, 말이 많으면 나선다고들 할까봐요."

유독 버디무비(남자 둘이 짝을 이루는 영화)에 많이 출연해 남복(男福)이 많은 그지만 안성기와는 더욱 각별하다. 함께 출연한 영화만도 '칠수와 만수'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네 편째. 특히 '라디오 스타'는 출발부터 두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쓴 '맞춤형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가 크다.

"70%쯤 찍었는데, 생각만 해도 흐뭇해요. 가슴이 아릿하게 슬프면서도 행복한 영화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어느 배우든 인생에 몇 편 안 되는 적역을 만난 듯해요."

극중 퇴물 록가수 못지않게 그의 21년 영화인생도 적잖은 굴곡이 있었다. 80년대 중반 데뷔하고 한창 얼굴이 알려질 무렵 과감히 미국 유학(뉴욕대 연기교육학)을 떠났다 돌아와 다시 출발선에 섰을 때,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그리고 '박중훈식 코미디는 식상하다'는 소리를 듣던 90년대 말이 대표적이다. 혹 관객들이 극중 인물의 모습에 그의 이력을 겹쳐 읽을까 두렵지는 않을까.

"'대부'의 돈 콜레오네를 말런 브랜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잖아요. 신인배우보다는 그런 세월의 터널을 지나온 제가 연기하는 게 진실하지 않겠어요. 무엇보다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에 담을 진심을 믿으니까요."

'강적'의 경우는 그에게 다섯 번째 형사 역할이다.'또 형사야'소리도 나올 법한데, 그의 달변이 답한다. "슈워제네거의 액션이 지겹다고들 하다가 '트루 라이즈'에 열광했잖아요. 그의 액션이 지겨웠던 게 아니라 그가 지겨운 액션영화를 했던 거죠."

극중에서 탈옥수에게 인질로 잡힌 그는 아들의 수술비 때문에 순직이라도 하고 싶은 상황이다. 진범을 찾아야 하는 천정명 못지않게 절박한 입장이면서도, 체념 반 달관 반의 낙천적 유머를 구사한다.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의 전체 평이 썩 좋지 않은 것과 별개로, 유독 그의 대사에서 웃음이 많이 터지더라고 전하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거 아세요. 웃는 사람만 아니라 웃기는 사람도 엔도르핀이 분출되는 거." 사실 그는 직전에 그의 웃음 제조 기질이 "배우로서 영광이자 멍에"라고 잠시 언급했었다. 영화 이력 초반에 '할렐루야''깡패수업' 등 유독 웃음의 폭발력 강한 영화들로 인기를 얻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목숨 건 추격전의 와중에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재능을 자랑은 못할망정 천형(天刑)으로 탓할 이유야 없지 않은가. 그제야 그는 "학창시절 내내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 웃기는 게 장기"였음을 들려준다.

"근데 폭소만 있으면 허무하고, 미소만 있으면 지루하죠. 폭소와 미소의 적절한 조화가 갈수록 좋아져요." 그 언급이 가리키는 것이 '라디오 스타'임을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글=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6월 15일자 27면의 '또 버디무비 주연 박중훈' 인터뷰 기사에서 "그거 아세요? 웃는 사람만 아니라 웃기는 사람도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거"라는 박씨의 발언 중 '아드레날린'은 '엔도르핀'의 오기입니다. 아드레날린은 공격적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고, 엔도르핀은 기분을 좋게 하고 통증을 감소시키는 신경전달 물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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