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명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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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는 민족 고유의 명절이 없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음력설도 모르고 추석도 잊은채 살아왔다. 북한에서는 작년에야 비로소 추석에 이어 음력설이 되살아났다.
북한의 명절은 그 개념 규정부터 우리와 좀 다르다. 그들의『현대 조선 말 사전』(81년 판)을 보면「명절」을『나라와 민족의 융성발전에서 매우 의의 깊고 경사스러운 날로서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경축하는 기념일』로 풀이하면서 김일성이 출생한 4월15일을「우리 인민의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 생일 이외에 설날(1월1일), 김정일 생일(2월16일), 정권 수립일(9월9일), 당 창건일(10월10일)을 이른바「사회주의 명절」이라 하여 5대 명절로 친다.
그래서 이날을 휴무일·축제일로 지정하고 1년에 5차례씩 배급하는 고기와 과자 등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러나 북한에서「명절중의 명절」로 치는 김일성 생일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살아있는 사람의「생일」치고는 아마도 최대·최고의 호화판 잔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김일성의 생일잔치가 어떤 규모로 벌어지는가 하는 것은 지난87년 그의 75회 생일행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북한 주민들은 1월 하순부터 준비를 서둘렀다. 북한 전역의 도·군 지역에서 이른바「백성의 편지」를 채택하는 군중집회가 연일 열리는가 하면, 그 편지를 주민·학생·근로자·군인들로 하여금 2개월여 동안 각지를 출발, 평양까지 계주형식으로 운반토록 했다.
그뿐 아니라 재일 조총련에서는「애국 사업」이란 명목으로 5개월 전부터 헌금과 생일선물 헌납운동을 벌였다.
청소년들의 체육·예술축전이 벌어지고, 해외 예술단이 초청되는가 하면, 신문·방송은 연일 김일성 특집으로 메워졌다. 올해도 그의 생일을 맞아 북한 전역은 또 온통 법석을 떨고 있다. 그 여파는 우리의 대학 캠퍼스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정작 사회주의의 원조인 「마르크슨 나 「레닌」의 생일이 그처럼 요란스럽지 않은 것을 보면 지하의 그들이 김일성의 생일잔치를 보고 쓴웃음을 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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