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꽃길을 가노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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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때, 이 꽃길은 금만평야 쌀 싣고
군산 미두창 가던 길
피묻은 그림자들 일본으로 얹혀가던 길
허기진 유랑극단 줄행랑치던 길.
그러나 오늘 이 꽃길을 가노라면
목판화 속의 새들 살아 지저귀고
꽃숲을 빠져나온 햇살들
우직한 서해 바람과의 혼례를 위해
분홍빛으로 길을 묻고 있다.
오늘 이 꽃길을 가노라면
전국 노래자랑 입상한 아들 당당히 금의환향하는 모습
아버지 아버지!
공출 없는 이 벌판
이 한가슴으로 문지를께요
쾌지나칭칭 두 팔로 안을께요.
오늘 이 꽃길을 가노라면
개항 90년의 숨소리
무더기 무더기 비린내로 살아 전주로도 빠지고
솜리로도 빠지고
아 그러나 이 4월에 모두가 제값으로 살아
일년 내내 달려갈 그 꽃길을 위해 혼불이 되고 있다.
◇필자 약력
▲전남진안 출생. 전북대·고대 대학원·경희대 대학원 박사과정. 문학박사. 59년 『자유문학』지 시추천으로 문단데뷔.
▲시집 『목종』 『풍장』 『아침시작』 『겨울나무』, 산문집 『흐느끼는 복마』 『파도에게 묻는 말』, 논저 『한국현대작가연구』 등 저술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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