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다져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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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89년을 기초과학 연구진흥 원년으로 선포하고 올해부터 대학 연구비의 대폭 증액 등 2000년대를 향한 기초연구 육성사업을 펴 나가기로 했다.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대학 교수연구비 지원을 대폭 증액, 금년에 3천명에게 연간 1천만원씩(총3백억원) 지원하고, 92년부터는 3천6백명에게 1천2백만원씩(총4백32억원) 지원하며, 97년부터는 4천6백명에게 연 1천5백만원씩(총6백90억원)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밖에도 석사과정 30%에게 연2백만원씩, 박사과정 70%에게 연3백50만원씩 논문 연구비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또 전국 대학에 미 MIT대 수준의 20개 기초연구 센터를 설치, 운영한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과기처가 이처럼 대학에 지원을 늘리려는 것은 이공계 연구 인력의 80%이상을 차지하는 대학이 1년에 총 3백31억원(89년분)의 연구비로 3만5천명의 연구원으로 나누면 1인당 1백만원 꼴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 88년 우리 나라 기초연구비는 MIT 1개 대학의 10분의1, 1인당 기초연구비는 미국의 54분의1, 일본의 33분의1, 대만의 5분의1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기초 과학 연구에 너무 소홀하다.
과학기술이 선진과 멀리 떨어진 후진일 때 성장이 쉽다. 후진국의 과학 기술이란 마치 농구경기의 경우 자기 코트에서 공을 돌리는 것 같아 상대편의 저항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방 골 밑에까지 들어갔을 때 문제는 달라진다. 결사적으로 패스를 막고 슛을 막게 된다. 우리 나라의 기술은 70년대까지만 해도 기존기술을 도입, 변형해 상품화에 응용함으로써 거센 반발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미일의 기술 마찰에 따른 기술 내셔널리즘의 강화와 한국 기술의 급속한 선진화가 이제는 돈을 주고 기술을 사올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서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투자를 해야하는 분야가 기초 과학이다. 70년대 말부터 산업계를 중심으로 기초과학에 투자를 시작한 일본의 경우 2000년까지 미국과 대등 내지 확고한 2위 기술 보유국이 되기 위해서는 기초 과학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연초 일본 경제신문이 일본내 이공계 대학부장·국공립 연구소장·기업 연구소장 3백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현재 전 연구개발비의 20%선인 과학기술 예산을 40%이상으로 끌어올려야 2000년대 주요 첨단기술에서 미국을 추격할 힘을 갖게 된다는 처방을 내놓고 있다.
「모래밭에 물 붓기」처럼 생각되는 기초과학 투자는 상당기간을 앞두고 선행되어야 10년, 20년 후 그 결실을 얻게된다.
과기처의 기초과학 육성책은 이런 점에서 맥을 바로 짚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까지 확실한 재원 없이 세계 잉여금 등을 전용하는 방법으로 90년까지 3천억원, 2001년까지 1조원의 기초연구 기금을 조성한다는 방침이 자칫하면 민주화나 분배 문제 때문에 우선권에서 밀릴 경우 공허한 탁상공론에 그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기왕에 요기처가 이런 안을 마련했다면 국민·국회·행정부내 유관부처간에 공감과 합의를 얻어내 이를 결실로까지 이끌고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공염불의 청사진으로 끝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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