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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치안과 민생치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현대중공업·문목사 사건 등으로 가뜩이나 시국이 어수선한 판에 살인과 강도·강간 등 흉악범 죄들이 곳곳에서 횡행, 사회불안을 더해주고 있다. 며칠 전 길 가던 20대 여사원과 술집 지배인이 흉기에 찔려 숨졌는가 하면 등교 길의 여고생이 납치되고 서울 상암동 주택가는 하룻밤 새 일곱 차례 나강·절도가 휩쓸고 지나갔다.
숨진 2명의 희생자는 사소한 시비나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고 다짜고짜로 달려든 청년들의 칼부림으로 영문도 모르고 참변을 당했다.
나라의 치안이 아무리 허술하고 형편이 없다 할지라도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노인회와 새마을지도자들이 맨손으로라도 범죄를 막아보겠다며 「범죄추방 봉사대」를 만드는 형국이 되었으니 경찰은 뼈저린 각성이 있어야할 것이다.
물론 경찰도 나름대로의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지난번 여의도 농민시위사건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잇따라 발생하는 집단시위와 노사분규하며, 최근에는 좌경 폭력수사에 허덕이는 관에 일반 범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사정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사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여기 저기서 산발하는 시위와 분규에 시골 파출소 경찰까지 차출해야하는 사정을 전혀 이해 못하는바아니다.
그러나 흉악범이 활개치고 피해가 속출하는 불안하고 살벌한 분위기에서 나날을 보내야하는 국민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
공공의 안녕 질서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라는 경찰의 기본업무 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저울질하기 어렵지만 전자를 위해 후자를 전혀 돌보지 않을 수는 없다.
시국치안이나 민생치안은 따지고 보면 별개의 것이 아닌데 양자를 다같이 대처하는 방도를 찾지 않고 어느 한쪽을 공백으로 내팽개치는 것은 경찰지휘 체계의 무능과 무책임의 소산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여의도 농민시위가 있기 전만 해도 모든 경찰력을 강·절도와 폭력범 소탕에 투입하겠다던 치안본부가 고위층의 말 한마디로 하룻만에 시국치안 체제로 전환, 필요이상의 경찰인력을 배치하는 등 지휘체계가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이처럼 경찰의 지휘부가 일관성을 유지 못하고 혼선을 거듭하는 터에 일선 경찰이 범죄 예방과 수사를 지속적으로 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찰인력 부족이 문제가 된다면 경찰조직을 시국과 민생경찰로 이원화해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거나 경찰의 일반업무를 대폭 축소하는 등 항구척인 대책을 세우는 게 마당 하다.
경찰이 관장하고 있는 업무 가운데 범죄와 무관한 비권력적 행정업무를 맡고 있는 경찰만 범죄수사 쪽에 돌려도 사정은 한결 달라질 것이다. 예컨대 주차단속이나 운전면허 발급 업무, 신호기설치 등은 지방행정기관 등에 이양해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인·허가 업무 가운데 다른 기관이 맡아도 되는 업무가 적지 않다.
경찰인력의 7·7%를 수사부문에, 일선 지·파출소에는 42% 밖에 배치하지 않는 인력배치상의 불 합리를 시정하지 않고서는 범죄의 무방비 상태는 개선될 전망이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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