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강의' 주입식 수업 진행 학부엔 '得보다 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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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각종 조사 결과 국내 대학의 경쟁력은 기업에 비해 떨어지고 있으며, 밖에서 보는 시각도 곱지 않다는 점은 대학 교육자 입장에서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대학들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변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된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영어로 하는 강의도 경쟁적으로 개설하고 있다. 심지어는 교수를 신규로 채용할 때에 영어 강의 능력 등을 평가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영어 강의의 목표와 효과를 잘 분석해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연구 중심 대학 대학원 학생들의 경우 국제 학술대회에 나가면 논문 발표 등을 영어로 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 강의가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수요자인 학생들의 반응이다. 대학원 학생들은 취업 후에도 계속 연구개발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 직장생활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영어 강의에 대한 호응도는 높은 편이다.

기업에서도 국내 박사들이 학문능력 등은 탁월하나 영어 발표 등은 외국박사에 비해 충분치 못하다는 이야기도 있어 대학원에서의 영어 강의는 긍정적인 효과가 많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학부 강의를 영어로 해야 되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나 자신도 몇년 전 영어 강의를 대학원과 학부에서 개설한 적이 있다.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미국에서도 영어 강의를 수년간 해본 경험이 있는 터라 영어를 구사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대학원 학생들의 수업 효과가 매우 좋았던 데 비해 학부 학생들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유학을 간다든지 하는 식으로 영어가 반드시 필요한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영어 강의에 대한 집중도가 많이 떨어졌다.

학생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강의 내용의 습득보다는 영어 청취에 더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학습효과가 충분치 못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대학원 수업의 경우 30~40명 내외로 진행된다.

강의 방식도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비교적 소형 강의로 학생들과 충분한 토론이 영어로 될 수 있어 영어 청취력은 물론 발표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학부 강의의 경우 대부분이 70~80명 이상의 대형 강의 중심인 데다 강의방식도 토론보다 주입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어 영어 강의의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분석이 돼야 한다고 본다.

모든 대학에서 획일적으로 영어 강의를 강요하기보다 학교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영어 강의의 고객이 누구며,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충분히 파악해 추진할 시점이 됐다는 생각이다.

한민구 서울대 공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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