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분규」막을 내부 완충장치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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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온 서울지하철파업을 계기로『앞으로 또 닥칠지도 모를 파업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한다』는 데에 시민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비록 자진 해산해 노조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하더라도 지하철공사와 노조에 이대로 3백만의 발을 계속 맡겨도 좋으냐』는 회의가 짙게 깔려있다.
비록 짧은 파업기간 동안이었지만 이와 관련해 지하철공사체제의 개선방안이 다각도로 논의됐다. 파업을 막기 위한 구체적 대안들도 다양하게 제시됐다. 논의는 대체로 두 갈래로 가닥이 잡혀진다.
하나는 중요한 공익사업의 하나인 지하철에 더 이상의 분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자는 흐름이고, 또 하나는 문제가 제도의 결점이라기보다는 팽팽히 맞선 노사양측의 대립을 중화시킬 수 있는 완충정치의 부재에 있다고 보고 분규가 났을 때 분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지만 17일 서울시가『현행 지방공사제 대신 지하철을 시 직영 산하기관으로의 형태전환을 검토 중』이라고「처방」을 내놓은 것은 전자의 대표적인 제안.
이 안은 노조원들을 준 공무원 테두리로 끌어들여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허용하되 단체행동권을 제약하겠다는 발상이다.
일본의 모델을 그대로 모방한 이 방안이 발표되자 노조는 즉시『탄압책동의 하나』로 규정하고 반발해 시행자체가 또 다른 분규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으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확실한 안전보장책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공공사무를 가능한 민간운영에 위탁하는 행정방향과는 역행하며 현실적인 실현과정에 난관이 많다.
분규해결장치에 초점을 맞춘 제안은 공익사업의 운영에 시민대표가 참가,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분규 때는 노사양쪽을 조정할 수 있도록 운영이사회를 설치하는 방안이 대표적으로 제시됐다.
시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합의사항 해석문제가 이번 분규의 불씨였던 만큼 앞으로는 조항작성 때부터 정확한 시비를 가리도록 노사협상 때 변호사를 배석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고『그 동안 3자 개입 금지조항에 묶여 협상에 미숙한 노사양측에만 문제해결을 떠맡기다보니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이런 두 갈래의 흐름을 놓고 볼 때 분규를 아예 근절시키기 위해 공영기업으로의 공사제도의 개혁보다는 분규해결을 위한 내부적 장치마련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이 서울시 관계자의 견해다.
이번 분규에서 또 하나 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은 것은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지하철공사의 재무구조 상태.
지하철공사의 부채는 88년 말 현재 2조6백2억 원으로 내자 1조7천6백억 원, 외자(차관) 2천9백억 원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른 원금 및 이자상환을 위해 연간 3천8백23억 원이 필요한데도 지하철자체운영수입은 고작 1천9백21억원.
부족 분의 충당을 위해 다시 서울시와 정 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어 결국 시민들의 막대한 세금으로 지하철이 유지되고있는 셈이다.
서울지하철의 재정 가운데 매년 지급이자로 지출되는 비율은 45%로 런던의 0%, 파리의 14%, 함부르크의 4%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결국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재원조달계획을 완벽하게 세우지 않은 채 공사를 감행한 후유증이다. 이 상태에서 다시 서울시는 매년 3천6백억 원의 담배소비세에 기대어 모두 4조원이 들어갈 5∼8호선의 착공을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볼 때 지하철은 지나간 15년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당분간 구조적인 진통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재정·인사·노무관리 모든 부문에서 획기적인 구조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외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우리와 가까운 일본에선 시민생활과 직결된 지하철·수도·가스등이 모두 공영기업의 형태로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관장하고 있다. 노조는 임금 등 근로조건에 대한 협상은 가능하지만 파업이나 태업 등 쟁의행위는 엄격히 금지돼있다.
일본은 공익사업의 경우 기업성과 공익성의 비율을 상대적으로 분리해 기업성이 높은 경우는 지방공사로 따로 독립시켜 영리를 목적으로 하고 공익성의 비중이 높을 때는 이처럼 공기업형태로 운영하는 방식을 쓰고있다.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도 당초 상당부분이 개인기업이 건설, 운영하는 사철형식이었으나 도심지 교통이 복잡해짐에 따라 도심대중교통 수요의 충족을 위해 저렴한 요금으로 승객들을 수송하기 위해 시 당국이 흡수해 공영 기업화시켰다.
그러나 유럽특유의 노조강세와 사철 때의 전통이 남아 파업 등 쟁의행위는 비교적 자유로우나 시민들의 여론이 노동쟁의 때 가장 주요한 요소라고 판단해 운행 정지는 거의 하지 않고 역무 기능의 파업이나 태업 등을 비교적 자주 벌인다.
근본적인 체제개편이든 현 체제 내에서의 쇄신이든 서울지하철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로 태어나야만 한다. <이철호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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