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곤일척의 승부로 국면전환모색-취임한돌 맞은 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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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5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노태우 대통령은 스스로의 평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세평 속에 심한 갈등을 느끼며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그는 우선 누가 뭐라 해도 민주화와 권위주의 청산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자부심과는 달리 민주화과정에서의 필연적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 사회불안을 극복할 능력이 과연 있느냐, 없느냐가 더 핵심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해결책을 찾고있다.
그로서는 지금까지 인내 속에 추진해온 민주화가 그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대세에 밀린 표류로 비쳐지고 있는 이유를 냉철히 파악, 그 처방을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 되고 있다.

<공권력 허점 인식>
왜 국민들은 대통령이 앞장서 수범한 권위주의 청산과 민주적 리더십의 존중, 그로 인해 도처에 「넘쳐흐르는」자유의 황홀함보다는 불안을 더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 같은 불안은 심하다는 정도를 넘어 자칫 우리사회가 무너져 내리고 말듯한 위기감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해 노 대통령은 대충 세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분석하고 있는 것 같다.첫째, 그 자신 민주화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집착한 나머지 공권력행사와 좌경폭력세력대처에 스스로 허점을 남겼으며 둘째, 여소야대의 정국구도로 인해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제약이 따랐고 세째, 야당과 언론의 균형을 잃은 여론조성으로 상당부분 실상이 오도되고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 같은 이유로 그의 집권1년은 출범 때보다 위험부담이 훨씬 늘어났고 만약 이 시점에 정면대처하지 않고 적당히 비껴가다간 앞으로의 4년도 지난 1년의 그것을 크게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한 것 같이 보인다.
마침내 노 대통령은 취임1주년을 맞아 건곤 일 척의 승부를 건 국면전환 책을 나름대로 제시했다. 우선 그는 지금까지 많은 국민들에게 회의와 억측을 자아내게 했던 중간평가를 신임국민투표 쪽으로 결심을 굳히고 민주화의 호기를 송두리째 잠식할지도 모르는 좌경폭력세력에 대해서는 사생결단으로 맞설 각오를 피력했다.
또 여소야대의 정국구도아래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좋게 지내는데」비중을 두어온 3야당총재들과의 관계도 「할말은 하는」관계로 전환할 뜻을 비췄으며 언론의 비판과 요구에 대해선 보다 중심을 잡고 취사선택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했다.
노 대통령이 승산이 불투명한중간평가를 결국 신임투표로 굳힌 것은 달리 대안을 찾기가 어려운데다 극적인 전기를 찾자면 판을 잃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인 듯하다.
노 대통령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임하겠으며 3김씨의 의견을 참고할 뿐』이라고 말해 질질 끌려가는 대통령이 아니라 자리를 잡고라도 정면돌파로 힘있는 대통령노릇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그는 좌경폭력세력을 이대로 두고는 민주화는커녕 체제수호가 어렵다는 확신 아래 재 신임 여부와는 관계없이 좌경척결에 단호하게 대처한 뒤 그들의 의도대로 정권이 무너져도 되는가를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할 생각임을 비췄다.

<군 동원 불사 주목>
노 대통령은 3, 4월 좌경폭력시위를 경찰이 막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군 동원 등 그이상의 조치도 불사할 뜻을 밝힌 것도 주목된다.
노 대통령이 특히 최근 야당지도자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토로하는 것도 주목할만한 변화 중 하나다. 아무리 여소야대 라지만 야당도 정부가 해결할 문제와 해결 못할 문제를 구분해야지 무조건 「정권타도」의 편에 서서 이미지 플레이만 한다면 공존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논리인 것 같다.
국가적 지도자라면 이유야 어떻든 폭력은 안 된다고 말해야지 정부가 화염병을 문제삼으면 최루탄을 들고 나오고 폭력을 부추기는 것은 유감이라는 지적이다.
또 광주에서 분출되는 「요구」에 대해서 이제 야당도 자제를 촉구할 때가 되었으며 학생들이 입학등록금을 받고 대학총장을 직접 선출하겠다는데 대해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지난 1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대통령은 힘이 빠지고 책임은 그대로인데 반해 3김씨는 책임은 여전히 없고 힘만 거세어졌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기본인식이며 중간평가는 이의극복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부에선 회의적>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런 각오와 국면전환 책이 꼭 실천된다는 보장은 불투명하다.
신임투표를 한다고 하지만 현재의 정국구도상황에서 대통령선거에 버금갈지도 모르는 대회전에 대비한 자금동원과 전략수립은 물론 범여권의 단결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더우기 야당이 노 대통령의 결단을 어느 정도 무게로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며 재야운동권은 대통령의 강도 못지 않게 거세어질 것이 예상된다. 이런 와중에 국민들이 민주주의란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걸머져야하는, 그래서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인식해 그야말로 공권력행사에 협조해줄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같은 여건을 두루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의 결심이 의도한대로 실현되자면 이제 그는 「단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고 「말」보다는 「실천」을 앞세워 분명히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 독을 깨기는 쉬워도 붙이기는 어렵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체득시켜야 할 것 같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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