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의 목소리 나올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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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잦은 화염병 공격사건은 이제 광주항쟁의 비극적 상처가 치유되기를 염원해온 국민들을 당혹하게 하고 있다.
파출소에 대한 화염병 공격은 이제 다반사처럼 되어 버렸고 미문화원 공격은 한미관계를 흠 가게 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최근에는 검찰청· 도지사공관 등 국가기관을 상징하는 건물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22일에 있었던 전남 도지사 공관 공격 때는 쇠파이프까지 동원되어 기물을 부수고 도지사가 신변에 위협을 느껴 피신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일부 학생들의 과격한 폭력행위를 보면서 우리는 그 근원이 처절했던 광주항쟁의 한이 당사자들에게 흡족하게 풀어지지 않고 있는데 대한 좌절감에 있다는 점을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좌절감은 국회 청문회를 통해, 또 정촌가 마련하고 있는 광주시민들의 명예회복조치를 통해 치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절대 다수의 광주시민들은 비폭력적 방법으로 이 과정에 자신들의 의사를 열심히 반영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마당에 일부 과격학생들이 「한풀이」로 밖에 볼 수 없는 화염병 공격을 일삼는 것은 화합을 바라는 국민은 물론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대다수광주시민들의 노력에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우리는 민주사회에서 시민들의 시위 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폭력적 방법은 안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이 점에 대해서는 광주시민을 포함해 범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광주의 경우처럼 피맺힌 한을 품고 있는 지역에서는 광주항쟁의 희생을 직접 겪지 않은 외부로부터의 그런 설득은 절실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젊은이들에 대한 자제설득이 광주시민 스스로와 지역출신 지도층에게서 나오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한이 당사자들이 납득할 정도로 풀려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자격지심 때문인지 그런 설득이 공개적 발언을 통해 널리 표현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제는 침묵으로 방관만 하고 있을 단계를 넘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런 대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에 대한 공격은 광주항쟁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칫 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합의된 염원을 흐트릴 가능성 까지 있는 것이다. 의사표시의 정상적 통로를 제대로 이용하지 않은채 폭력으로 울분을 푸는 행동은 역으로 또 하나의 「힘」이 동원되는 구실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과격 학생들은 지난 한해동안 광주항쟁이 쟁취한 법적· 도덕적· 역사적 재평가를 오손하지 않기 위해서도 폭력적 방법을 말아야 한다.
학생들의 자제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광주항쟁의 원로지도자인 홍남순 변호사 같은 인물의 입에서 나온 것은 소중하다. 그와 같은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호남지방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는 평민당도 보다 확실한 목소리로 이와 같은 노력에 앞장서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광주 항쟁의 비극은 더 이상 폭력의 악순환 없이 조속히 치유되는 것이 국민 전체의 염원이라는 사실을 모든 당사자들이 행동의 지침으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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