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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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문사 편집국에 앉아있다 보면 날마다 독자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게 된다.
과거 독자들, 특히 젊은층의 전화는 정권의 독재성을 비판하고 신문의 무기력을 나무라는 게 주류였다.
사회 전반의 민주화 추세와 함께 그런 전화도 점차 사그라들어 마음이 다소 가벼워졌다.
그런데 최근 다시 새로운 양상의 전화가 심심치 않게 걸려와 기자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기성세대들의 하소연겸 호소조 전화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는 내용이다.
16일 오전의 전화도 그렇다. 72세의 할머니라고 밝힌 이 독자는『요즘 돌아가는 사회현상을 보면 우리 사회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불안해서 이 늙은이라도 들메끈을 단단히 매고 거리에 나서고 싶은 생각』이라고 말머리를 텄다.
젊은 한때는 공산화가 되더라도 민족에 이롭지 않겠느냐고도 생각했었다고 했다. 대학 교육을 받고 사회 활동도 했다는 이 노인은 김일성의 북한에서 일어난 일을 지켜보고 동구권 사람들과 접촉하고서는 인간에게 「생각할 자유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그것을 뻣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요즘도 타임·뉴스위크지를 정독하고 미군방송의 주요 뉴스를 꼭 시청한다는 이 할머니는 『반조각이나마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터전을 갖게된 게 그래도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우냐』며 『당신(기자)의 자식을 위해서도 급진적 움직임에 정론을 펴야될 게 아니냐』 고 하소연했다.
음성이 어느덧 흐느끼는 듯 애원조로 변해있을 만큼 나라를 절절하게 걱정했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가 김일성의 본질을 너무 모르고 있다고 안타까와 했다.
이 할머니는 『김일성은 플래스틱처럼 변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서 『당신 자식이 이북 사람처럼 살기를 바라느냐』 고 물었다.
일부에선 이 할머니의 얘기를 『늙은 자산가의 분단 고착적 논리』라고 매도할지 모르나 기자는 『70평생을 살아온 끝에 얻은 결론』 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이수근<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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