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다른 각론을 듣고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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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냐고 몹시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요사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변화의 템포가 너무 빠르고 그 모습이 너무 휘황찬란해서가 아니라, 도시 요량도 짐작도 할 수 없이 갈래갈래 헝클어져 그 변화가 일어나고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거기에다 정치권 안에 있는 정치인들이나 일반 특정 단체들이나 하나같이 뭘 어떻게 하자는지 방향도 목표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주장들을 펴고있어 더더욱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불안은 지위의 위아래를 막론하고, 계층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한결같이 느끼는 불안이고 당혹감이라 할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느냐. 무엇이 어떤 식으로 겨냥돼서 어떤 식으로 해결되고 어떤 식으로 바뀌어져 가고 있느냐.

<석연찮은 북방열풍>
먼저 밖으로 북방정책이라는 것에서 보면 금방 헝가리와 수교가 됐다 하더니 어느새 금강산이 눈앞에 왔다갔다 하고, 거기에 영원히 막힌 듯이 금성철벽처럼 버티고 선 휴전선이 금강산 가는 길목에서 곧 뚫려지게 될 것으로 보도되고, 그 위에 만주 수억평의 땅이 마치 고구려의 고토를 개간하듯 우리 손·우리 기술로 일구어질 것이라고도 하고, 이젠 시베리아까지 우리 머리·우리 인력이 가서 자원을 개발할 것이라는 기대가 넘쳐나고 있으니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석연찮은 것이 너무 많아 황당해지고, 사실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 해도 기대를 너무 부풀게 해놓아 더 큰 문제가 더 크게 벌어질 것이 확실하다.
지금 우리의 북방정책은 그 당위성과 현실성이 너무 크고 너무 확대돼서 누구도 거기에 찬물을 끼얹어 냉정을 되찾는 소리를 하기 어렵게 돼 있다. 좀더 신중론을 띠면 그 주장은 완전히 보수주의자·반동주의자로 몰리고, 하다못해 점진론이라도 펴면 분단주의자,「레드 콤플렉스」에 빠진 자로 지탄되어서 그 누구도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좀더 조심스럽게』『좀더 관망해서』『좀더 치밀하게』『좀더 많은 정보를 얻어가며 해보자』라는 자중론을 펴기 어려운 상태에 이미 이르러 있다.

<재야는 가는 방향 불명>
그러나 저쪽에서는 엄연히 북한산 무연탄이 이쪽 포구로 들어오고 있는데도 어떤 형태의 직·간접교역도 없다고 천명하고 있고, 이러저러한 물자교류상담이 여기저기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데도 어떤 양태의 계약상담도 없다고 방송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내세우는 사람도 당 고위레벨, 정부 높은 자리의 책임있는 지위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에도 으레 내놓는 정경분리 원칙에 맞추어 그쪽 대표자·상담자·계약자는 모두 책임회피가 얼마든지 가능한「민간인」이라 하고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이쪽의 상대자는 그쪽 마음대로 정하고 싶은대로 정하고, 뽑고 싶은대로 뽑아서 이사람 오라, 저사람 만나자를 마치 자기 당내 사람 선별하듯이 하고 있으니 어떻게 그쪽에서는 그렇게 쉽게 자유로이 거리낌없이 해도 괜찮은 듯 보이고 있는가.
그런데도 이쪽에서는 그 부름에 혹시 빠질세라, 그 명단에서 혹시 제외될세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도처에 풍기고 있으니 이쪽 국력이 너무 세서일까, 아니면 막무가내일까.
여당지도자는 여당지도자대로 우리가 혹시 파트너에서 빠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듯하고, 야당 지도자들은 야당지도자들대로 국내에 있을 때나 나라밖으로 나갔을 때나 한결같이『소련을 간다』『중국을 간다』『김일성을 만난다』는 소리를 경쟁적으로 하고있다.「왜」가고,「어떻게」만나고,「무슨」일을 의논하려고 하는지는 전혀 이해할만한 설명도 없고 납득할만한 주장도 없고 실현해봄직한 정책도 없다.
비단 북방정책에서만 그렇다면 으레 초기단계에 있음직한 혼선으로 한겹 접어두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안은 더더욱 심각해 보인다. 노조는 노조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재야는 재야대로, 학원은 학원대로 모두 요동을 치고 있다.
도대체 노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디고 그 목표는 어디로 정하고 있는지, 자유민주주의라는 원을 계속 그리고 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원을 그리고 있는지, 그것은 노조 자신도 모르고 사용자측도 모르고, 국민도 정부도 야권도 모두 다 모르고있는 것만 같다.
소위 말하는 재야의 실체는 무엇인지, 그 재야가 가고자 돛을 올린 섬은 어떤 섬인지, 그리는 세계는 또 어떤 세계인지, 그 섬·그 세계가 만일 이 지구상에 있다면 어느 바다·어느 나라의 그것에 접근해 가려고 하는지, 우리는 한번도 구체적으로 명백히 들어본 일이 없다. 그저 막연히 내세우고 있는 반민주화투쟁·반파쇼·반외세 투쟁은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어서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계속 내세울 원칙이 아닌가. 그 원칙을 반대하는 사람이 이 땅에 아직도 존재하는가.
시간적으로 영속화되고 공간적으로 보편화된 소리는 색깔이 없는 소리다. 정치 지도자들이나 습관처럼 으레 하는 소리가 아니던가. 어째서 60년대식 주장에서 좀더 발전한 색깔있는 주장을 재야는 국민 앞에 제시하지 못하는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재야를 혼돈하고 불안해 하는가.

<거꾸로 가는 정치권>
학원은 또 어떤가. 심지어는 총장도 학생의 동의 없이는 뽑기 어렵게 돼가고 있고, 등록금도 학생 허락 없이는 못 올리게 될만큼 대학정책에 길이 보이지 않고 그 앞날에 빛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학교 안에서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고 학교 밖에서도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나라 안을 보나 나라 밖을 보나 조명이 유난히 어두운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여도 야도 정부도 모두가 인기에 영합해서 세력판도 넓히는 데만 급급해 있다. 깊은 연구도 없고 일관된 정책도 없고 꼭 그리로 가야겠다는 정향도 없고 비전도 없이 마치 지금 모든 것을 끝장내겠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정치는「개인화」를「제도화」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계산되는 미래」로 바꾸어주는 행위이며 기술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권과 그 정치권의 정치는 거꾸로 개인화를 더 개인화시켜 영웅화하려 하고 있고, 요량되지 않아서 불안하기만 한 미래를 더 혼돈의 도가니로 밀어넣고 있다.
이젠 정부도 여당도 야당도, 심지어는 재야도 어떤 변혁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해지는지, 그리고 어디서 정책이 어떻게 의논돼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구체적인 청사진과 행위구도를 내놓아야 할 때다. 막연한 주장, 인기를 노리는 공허한 선전, 30년 전의 원칙론적인 총론이 아니라 색깔이 다른 각론을 내놓아야 할 때다.
그것이 바로 다음 시대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송복-연세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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