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통합신당, 기득권을 버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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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민참여통합신당'의 등장으로 정치권의 구조변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민주당의 내분이 마침내 분당으로 귀결되고, 정치권은 바야흐로 '신(新)4당체제'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장의 관심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당적을 포기하고 통합신당에 합류하느냐는 것이다. 그동안의 정치적 관계로 보아서는 盧대통령이 신당에 합류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미국식 의회정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미니 여당을 갖고 거대 야당을 상대로 국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안으로는 盧대통령이 당적을 초월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각 정당들을 상대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는 점에서 盧대통령의 결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통합신당의 출현이 정치개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통합신당은 자신의 출생의 정당성을 지역주의 극복과 구시대 정치의 혁파에서 찾고 있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등록 후 기자회견에서 "지역주의 극복이 국가의 장래와 명운이 걸린 이 시대의 가장 긴요하고 막중한 과업"이라며 "구시대 정치의 폐단인 보스정치와 계보정치.권위주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신당에 찬성하든 아니 하든 간에 통합신당이 내건 이 목표는 현재 우리 정치권이 반드시 이룩해야 할 과제다. 통합신당이 그야말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그들의 희망대로 내년 총선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겠다는 각오 없이는 이루기 어려운 목표다. 만약에 통합신당이 자기혁신에 실패하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통합신당을 정권이 바뀌면 으레 생겨났던 또 하나의 '대통령 정당'으로 간주하고 민주당 분열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통합신당이 제기하는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이를 계기로 우리 정당들이 이념적 정책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통합신당은 대체로 민주당의 진보세력을 중심으로 한나라당의 탈당파와 개혁당, 그리고 원외의 '신당연대'와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합류하는 그런 모양새를 갖출 것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통합신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정점으로 자연스레 우리 사회의 진보세력을 대변하는 정책정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또 통합신당은 당연히 그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만약에 통합신당의 이런 가능성이 현실화한다면 우리 정치권은 비로소 '3김(金)정치'의 망령을 극복하고 지역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념과 정책에 따라 구분되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한나라당과 자민련, 그리고 분당되고 남은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보수정당이지만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볼 때 내부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미 세대교체와 5, 6공 세력의 퇴진을 놓고 노선투쟁이 내연하고 있다. 통합신당의 출현으로 이러한 노선투쟁이 본격화해 이른바 '합리적 보수'가 중심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다면 통합신당의 역사적 의미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통합신당의 성공을 전제로 할 때에 더욱 가능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통합신당이 자기혁신에 실패하고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인다면 보수 야당은 그 반사이익으로 개혁하지 않고도 다가올 총선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통합신당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한 정치집단의 승부수가 통했느냐 하는 문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합신당은 자신의 모태였던 민주당의 수많은 동지가 배신감을 느끼는 가운데 어려운 출발을 시작했다. 통합신당의 출범이 우리 정치사에서 또 하나의 웃지 못할 희극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스스로가 천명한 과업을 달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희생과 국민에 대한 책임감이 따르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양승목 서울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