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의 지리산 가을편지] 외딴집으로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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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길에 집이 있습니다. 한 집에서 일평생 살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복이겠지만, 여러 곳을 전전하는 삶 또한 그리 나쁘지 않지요. 산중의 외딴집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이사는 익숙한 풍경,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이지만 새로운 지수화풍(地水火風)과의 만남입니다. 몸을 옮기면 몸이 바뀌는 법.

섬진강변 아주 작은 마을 마고실의 감나무며 어름나무며 방아풀을 두고 갑니다. 지리산 생활 6년 만에 여섯 번째 이사이니 참으로 깊은 병이지요. 산중에서 살다 보면 강이 그립고, 강변에 살면 산이 그리우니 내내 거처가 횡설수설입니다. 한 나무 아래 삼일 이상 머물지 말라는 삼일수하의 경계를 알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집착이자 욕심이지요. 지리산 골골 1년씩만 살아도 30년은 더 살아야 합니다. 지도에 나오지도 않는 마을, 군불 지피는 빈집을 고집하며 살다 보니, 비로소 환멸과 권태의 도시마저 참으로 아름답게 보입니다. 실로 오랜만에 굴뚝 연기 오르는 외딴집 하나, 청명청명 가을 하늘이 이불을 덮어 줍니다.

이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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