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날마다 상여도 없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날마다 상여도 없이 떠나가는 꽃들. 이성복(1952 ~ ) '날마다 상여도 없이' (전문)

저 놈의 꽃들 또 피었네
먼저 핀 꽃들 지기 시작하네
나는 피는 꽃 안 보려고
해 뜨기 전에 집 나가고,
해 지기 전엔 안 돌아오는데.
나는 죽는 꽃 보기 싫어
개도 금붕어도 안 키우는데,
나는 활짝 핀 저 꽃들 싫어
저 꽃들 지는 꼴 정말 못 보겠네
날마다 부고도 없이 떠나는 꽃들,



한동안 뜸하던 이 시인의 시를 한 묶음 읽으니 배가 뿌듯하다. 생명의 덧없음을 꽃이라는 대상을 통해 무슨 타령의 한 대목같이, 투정조로 쏟아 놓는다. 부고도 상여도 없는 모든 생사의 안타까운 갈림길은 어디에나 주위에 널려 있구나. 꽃으로 불리는 대상은 상당히 가까운 사이인지 '저놈'하면서 욕부터 나온다.

마종기<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