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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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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동물이 느끼는 공포는 뇌의 깊숙한 곳에 있는 편도체에 각인된다. 쥐가 고양이를 보면 편도체의 자극으로 교감신경이 긴장돼 꼼짝없이 숨만 몰아쉰다. 그러나 편도체를 다친 쥐는 오히려 고양이에게 덤벼든다. 동물의 분노는 뇌의 아랫면인 '시상하부'와 관련돼 있다. 이 부위를 자극하면 무차별 공격에 나선다. 대표적인 예가 1850년대 미국 철도노동자인 피어니스 게이지다. 평소 사려 깊고 친절했던 그는 폭발사고로 뇌를 다친 뒤 마구 주먹을 휘두르는 무뢰한이 됐다.

뇌 생리학자들은 테러에 대해 색다른 분석을 한다. 증오와 분노가 뇌의 시상하부를 자극하면 테러범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끔찍한 테러현장은 대중의 편도체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테러범은 이를 통해 공포감의 극대화를 노린다. 이에 대응한 뇌 생리학계의 극비 연구도 한창이다. 특히 뇌파 탐지분야의 성과가 눈부시다. 최근에는 p300이라는 특정 뇌파가 초점이다. 테러용의자에게 그들만이 아는 은밀한 용어(목표 자극)를 들이대면 300~400ms(1ms는 1000분의 1초)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p300이라는 뇌파가 뜬다는 것이다.

성경 창세기에는 아담의 아들인 카인이 동생 아벨을 들로 불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고는 쳐죽인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자 첫 테러다. 야훼가 "네 아우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아벨을 죽인 카인은 시치미를 뗀다. 테러와 거짓말은 이처럼 태고적부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테러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789년 프랑스 사전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공포정치(reign of terror)'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확실한 정의는 없다.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한 조직적인 폭력 정도로 번역된다. 다만 범죄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일치하는 견해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테러가 마약처럼 강한 내성과 중독성이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테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만큼 테러의 유혹은 뿌리깊고 끈질기다.

지난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가두유세에서 테러를 당했다. 이제 누구도, 어느 곳에서도 테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런 판에 노사모 대표가 "60바늘 꿰맸다니 성형도 한 모양"이라고 입을 놀렸다. 국민 모두 충격을 받아 편도체가 얼얼한데, 이 사람은 뇌 시상하부를 다친 모양이다. 병든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느낌이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