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버블 논쟁의 이율배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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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03년 10.29 대책, 2005년 8.31 종합대책에 이어 그 완결편인 2006년 3.30 대책을 내놓았는데도 강남 아파트 가격 하락세가 가시화되지 않는 데 대해 정부는 정책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해 왔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강화된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면 주택 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할 것이며, 정말 강력한 세금폭탄은 아직 멀었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던 정부가 느닷없이 강남.서초.송파.목동.분당.용인.평촌 등 '버블 세븐'지역을 제외하면 주택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정부의 의도는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가격 상승을 과장하고, 언론매체들은 집값이 많이 오른 지역들만을 보도해 국민이 마치 모든 집값이 오른 것으로 착각하는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자료를 통해 정부는 지금까지의 주장이 허구였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강남 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이 폭넓게 확산된 것이 아니라 파급 범위가 극히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남 지역과 다른 지역, 소형과 중대형의 가격 격차가 벌어졌으며 지방 주택시장은 침체에 빠져 있다.

'버블 세븐' 자료 발표와 동시에 정부 고위 당국자들에게서 번갈아 나온 버블 붕괴 우려 발언은 더욱 혼란스럽다. 어차피 '버블 세븐'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주택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으니 급락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 마침내 강남 아파트 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하게 되었다면서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제 와서 강남 아파트 가격의 하락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일본의 버블 붕괴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좋지만 두 나라 상황의 차이도 인식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부동산 대출 규모가 훨씬 컸고, 융자 비율도 훨씬 높았으며 부동산 가격 상승도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버블이 급격하게 붕괴한 결정적 계기는 1년 남짓한 기간에 금리를 2배 이상으로 인상하고 부동산 관련 대출 총액 규제를 도입한 데 있었다.

문제는 정부가 부동산 가격의 연착륙을 바란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정책은 연착륙을 지향하는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스스로 폭탄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강력한 보유세와 1가구 2주택 보유자들에 대한 양도세 중과로 주택의 매각을 유도해 부동산 가격을 낮추겠다는 접근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세제 강화가 장기적인 부동산 가격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성공한다 해도 문제다. 국민의 주거 수준을 높이는 데 역행하기 때문이다. 주거 수준이 높아지려면 국민이 원하는 양질의 교육여건과 인프라를 갖춘 다양한 주택이 원활하게 공급돼야 하고, 자유로운 거래를 통해 주거의 상향 이동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세제는 상당수의 1가구 1주택 소유자들을 진퇴양난의 처지로 내몰고 있다.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소득과 관계없이 부과되는 무거운 보유세가 부담스럽지만 처분하면 양도소득세, 집을 새로 사려면 거래세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소득이 없는 노령 가구들은 더 난감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부동산세제가 이래서 더 걱정스럽다.

김경환 서강대·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