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상식이 통하는 사회 꿈꾸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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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리가 흔히 쓰는 상식(常識)이란 말은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상식이 풍부하다'고 했을 때와 '상식이 통한다'고 했을 때의 상식은 의미가 다르다. 전자가 이것 저것 많이 아는 지식을 뜻한다면, 후자는 인간이 지녀야할 건전한 판단력을 일컫는다. 그게 그거 같지만 엄연히 차이가 난다.

만물박사처럼 아는 것은 많지만 건전한 판단력 대신 편견과 독선에 가득찬 사람이 있다. 거꾸로, 배운 것은 별로 없지만 삶에서 터득한 지혜가 풍부한 사람도 있다. 이처럼 상식은 교육의 정도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인간은 전자의 상식을 통해 후자의 상식을 기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게 바로 교육의 이념이기도 하다.

상식이란 무엇인가. 독일의 법철학자 게오르크 옐리네크가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지만 도덕은 다시 상식의 최소한이라 할 수 있다. 세상만사 모든 상식적인 것 가운데 그래도 인간이 지켜야 할 불문율, 그러나 지키지 않아도 처벌은 받지 않는 것이 도덕이다.

한마디로 물 흐르듯 순리에 따르는 모든 것이 상식이다. 영국의 토머스 리드 같은 상식학파 철학자들은 이러한 상식의 보편성에서 진리의 최종 근거를 찾기도 했다. 팔방미인이었던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상식을 '인류의 수호신'으로 칭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에선 상식이 푸대접을 받고 있다. 푸대접을 넘어 아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된 느낌이다. 상식과 거리가 먼 일들이 너무도 자주, 그리고 태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초강력 처방으로 좀 수그러든 느낌이지만 강남의 40평대 아파트 값이 1백만달러를 넘고, 한달에 10만달러씩 치솟던 현상은 어떤 국제적 상식으로도 설명이 안 된다. 미국에서 1백만달러면 수영장이 딸린 거대한 저택을 구할 수 있는 돈이다. 또 이런 아파트의 세금이 시가 몇백만원짜리 자동차 세금보다 싼 것도 상식과 거리가 멀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번 주에도 상식과 동떨어진 소식들은 거의 매일 들려왔다. 초과근무와는 거리가 먼 노조 전임자들이 버젓이 시간외 수당을 받고 회사로부터 고급 자동차는 물론 기름값까지 제공받는다면 상식이 설 땅이 없다. 한 쌍의 결혼비용이 9천만원을 넘는다는 보도나 학원 강사의 연봉이 30억원에 달한다는 소식도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비상식적이란 방증이다.

그 중 압권은 태풍으로 가두리 양식장이 부서져 한숨 짓는 어민들 바로 옆에서 양식장에서 빠져 나온 고기를 낚는 사람들이다. 상식이 눈곱만큼도 없는 그야말로 몰상식한 경우다.

몰상식이 가장 횡행하는 곳은 아무래도 정치판이다. 국민이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든 말든 신.구파로 갈려 허구한 날 쌈박질만 해대는 집권당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대통령이 밉기로서니 시정잡배 운운하는 것은 몰상식의 극치다.

민생은 뒤로 한 채 비리 혐의를 받는 동료의원 옹호나 하는 야당도 오십보 백보다. 또 문화혁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문화계 인사를 코드가 맞는 특정 세력으로 대거 채우는 것도 일반의 상식과는 한참 괴리가 있다. 정치판의 몰상식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이처럼 몰상식이 판치는 세상에서 국민은 희망을 가질 수 없다. 그러니까 홈쇼핑 TV의 이민 소개 프로그램이 대박을 터뜨리고 기업들의 해외탈출 행렬이 줄을 잇는 것 아닌가. 이는 한마디로 몰상식에 대한 상식의 반란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란 별 것 아니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며, 제 본분을 지켜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잘 살게 되는 아주 평범한 사회다.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유재식 문화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