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합격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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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상에 공부처럼 하기 싫은 것은 없다. 하늘이라도 날것 같은 소년 소녀들이 공부에 매달려 꼼짝없이 묶여 지내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남들은 다 편안히 잠자는데 혼자 깨어 있어야 한다. 잠시 TV를 보면서도, 신나게 놀다가도 공부 생각만 하면 만사가 귀찮다. 그리고 불안하다.
이것은 대학입학 시험을 치러야 하는 학생이면 누구나 겪는 현실이다. 적어도 한국땅 위에서 대학에 다니려면 그래야 한다. 어느 대학을 지망하느냐는 둘째치고 시작도, 끝도 없는 공부를 몇 년, 몇 달을 두고 숨도 크게 못 쉬고 계속해야한다.
그런 부담은 해마다 무거워지면 무거워졌지, 가벼워질 낌새는 조금도 없다. 올해 서울대 입학생의 43%가 재수생이라는 사실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뒤집어 보면 그만한 수의 재학생이 재수생으로 밀려난다는 얘기다. 재수생이 다시 도전해 성공하기란 여간한 결심과 실천 없이는 어렵다. 우선 집에서 혼자 공부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즘 신문에서 남다른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들을 발견하고 있다. 어떤 재수생이 서울대에 수석으로 합격한 얘기다.
그는 어디로 보나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8평짜리 시영아파트에 사는 그에겐 마음놓고 공부할만한 공간이 없었다. 결국 매일 학원이 끝나기를 기다려 밤늦게 혼자 남아 공부를 해야했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10리 거리의 학원까지 꼬박 걸어다녔다.
그 동안 아버지, 어머니는 집에서 봉투에 풀칠을 해야했다.
그런 일거리마저 없는 날이면 어머니는 파출부나 막노동에 나서야했다. 청소원 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몸을 다쳐 불편한 상태다.
수석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그 아들은 신문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어머니를 끌어안고 좋아하고 있었다. 그의 착한 얼굴표정을 보면 연출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가정의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그에겐 격려와 분발의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는 부모를 원망하기보다는 감사해 하는 얼굴이었다.
입학시험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가혹한 제도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어려움의 극복, 의지의 실현이라는 점에선 의미도 있다. 우리는 그 각박한 입시계절에 마음 뿌듯한 인간드라마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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