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사법부의 거듭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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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공의 민주화 길목에서 지난 시절 규범적 기능을 실천하지 못한데 대한 질책과 독립·중립성을 요구하는 제자리 찾기 진통이 법원과 검찰에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우리사회 각 분야 중 가장 보수집단으로 인식돼온 법원에서 판사들의 집단서명 파동이 일어 사법부 수장이 교체됐고 부천서 성고문사건과 민청련의장 김근태씨 사건 등에 대한 수사기관의 고문이 뒤늦게나마 법정에서 인정되는 「사태」도 빚어졌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에서 매일 1∼2건의 법정소란행위는 계속됐고 심지어 판결문을 방청객들이 파기하는 수난도 법원은 겪어야했다.
검찰은 올 한햇동안 전씨일가 비리로 대표되는 5공비리 수사에 거의 모든 검찰력을 집중했으나 「사건수사」가 아닌 눈 가리고 아옹 식의 「인물수사」 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민주화를 외치던 시국·공안사범의 대량구속→대량석방과정에서 법 집행의 형평을 잃은 처사라는 자체 비판에 홍역을 치러야했다.
사법부가 올 한햇동안 겪은 가장 큰 진통은 법관 서명파동-.
6월15일 85명의 판사들이 「대법원의 면모일신을 촉구하고 신뢰받는 인물이 새 대법원장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양심선언서를 발표, 김용철 대법원장은 이틀만인 17일 자진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정기승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냈으나 부결되는 바람에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등 사법부 구성이 정치적 흥정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일었다.
이 파동에는 3백여명의 현직판사, 1백25명의 재야변호사, 1백81명의 사법연수원생들까지 참가해 사회양심의 최후 보루로서의 새 사법부를 이룩하려는 법조계 전체의 몸부림으로 평가됐다.
이에 앞서 대법원은 1월29일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문귀동 전 경장(41)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 문씨는 구속됐고 1, 2심에서 징역5년·자격정지 3년이 선고돼 대법원의 재판만 남겨놓고 있지만 원심에서 기각된 사건을 대법원이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파문이 컸다.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법원이 시국사건의 검찰수사에 불신임 판결을 내린 것으로 사법부 신뢰회복이라는 계기마련과 함께 검찰의 뼈아픈 자성을 촉구하는 결과를 낳은 것.
또 3월 4일 서울고법 최공웅 부장판사가 『형사피고인에게 방어권 행사 없이 형식적 변론만 보장하는 것은 사법권의 근본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이유로 강신옥변호사(현 의원)의 법정모욕 등 사건에서 14년만에 무죄를 선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거센 민주화물결속에서 법원은 12월15일 전 민청련의장 김근태씨(42)에 대한 재정신청사건을 받아들여 김씨를 고문한 고문경관 4명을 재판에 회부, 5공의 고문수사에 대한 경고와 함께 종지부를 찍었다.
검찰은 조직특성상 법원이나 다른 집단·계층에 비해 민주화에 부응하는 가시적 현상은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내연은 분명히 컸다.
전경환·기환 형제를 비롯, 전 전대통령의 처남인 이창석씨(37), 동서 홍순두씨(47) 등 전씨의 친·인척 7명이 검찰에 구속됐고 성역이던 「새마을」이 완전 해부됐다.
또 5공청산 차원의 일환으로 염보현 전 서울시장, 최열곤 전 서울시교육감,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 등이 구속됐으나 검찰은 핵심을 외면한 변죽만 울린 수사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결국 신임 검찰총장이 부임하면서「5공비리 특별수사부」를 편성, 5공비리 수사를 새로 시작하는 등 검찰 신뢰회복에 안간힘을 쏟고있다.
김기춘 신임검찰총장이 검찰권의 올바른 행사와 관련, 『나는 「모처」에도 「당」에도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수사에 관한 한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는 각오로 「대외」에 당당히 행동할 것이고 임기 중 검찰 신뢰를 기필코 회복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도 음미해 볼 만한 일.
검찰총수를 비롯한 전 검찰인이 검찰 신뢰회복에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분명하나 5공비리 수사에서 보 듯 전씨 부부·정치자금 등 정치권의 제약을 한계로 수용하는 것 또한 검찰의 현실이다.
그러나 법원·검찰에 분명히 새바람이 불고있다. 외풍에 관계없는 사회양심의 최후 보루로서의 법원과 엄정한 검찰권 행사를 통한 정의로운 검찰을 국민 모두가 바라는 것은 불문가지.
이제 이같은 국민적 합의 위에 규범적 기능을 수행하려는 자체의 뼈 깎는 노력만이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김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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