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일본, 노인 비즈니스는 청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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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돌아가시면 유품을 깔끔히 정리해드립니다."

"장례식도 미리 예약하면 할인해드립니다."

다소 섬뜩해보이기도 하지만 요즘 일본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성업중인 회사들의 선전문구들이다. 일본 사회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고령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사망 후 유품을 처리해 주는 회사인 키패스는 요즘 호황을 맞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사망할 경우 뒷정리를 맡아 해줄 곳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고령화에 따른 새로운 시장인 셈이다.

키패스는 유족들에게 필요한 유품을 챙기게 한 후 나머지를 처리한다. 건당 25만엔선. 평균 이사비용(5만엔)보다 훨씬 비싸다.

이 회사는 원래 일반 이사업체였으나 유품 처리가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2002년 업종을 전환했다. 현재 월 100건 정도 의뢰를 받고 있다.

키패스의 요시다 타이치(吉田太一)사장은 "독거노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 사업성이 밝다"며 "혼자 세들어 사는 노인이 사망할 경우에 대비해 집주인들이 먼저 의뢰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일본 미에(三重)현의 택배회사 수퍼산시는 거동이 불편해 쇼핑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필요한 물건의 구입과 배달 주문을 받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수퍼산시는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오전 11시 노인 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주문을 받는다. 주문접수를 받는 상담원은 회원과 건강이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이래서 평균 주문 시간은 20분 이상 걸리곤 한다. 또 물건을 배달한 후엔 노인들이 집에 쌓아둔 폐지 등도 수거해간다.

전화를 걸어 받지 않는 경우엔 회원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연락해준다. 노인들은 언제 쓰러질지 모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긴급연락망 덕분에 노부모의 임종을 볼 수 있었던 가족들은 이 회사에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수퍼산시가 받는 기본회비는 월 500엔으로 비교적 적다. 이 회사의 다카쿠라 데라카즈(高倉照和)사장은 "택배 사업은 고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 달렸다"며 "이런 서비스로 노인층을 잡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밖에 전일본공수(ANA)는 노인 전문 컨설팅 회사인 나프와 제휴해 노인들 입맛에 맞는 패키지 여행 상품을 개발 중이다. 일본 여행업계에선 이미 빡빡한 일정의 패키지와는 달리 노인의 건강상태를 감안, 출발 일정 등을 유동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실버 패키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 장례대행사들도 고령자나 그 가족을 대상으로 장례 예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자신이나 가족의 장례를 여유있게 준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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