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집권 시나리오」심증만 확인|8일 「일해 청문회」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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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구호 전 경향신문 사장과 정수창 전 대한상의회장을 상대로 한 8일의 일해 청문회는 「88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연구」라는 전두환씨의 장기집권 시나리오와 청와대와의 관계, 일해 모금의 강제성을 추궁했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청문회를 위한 청문회로 시종 했다는 평가.
야당 측은 정구호 씨의 극비문서에 대해 『5공의 고위정책결정으로 채택돼 실천됐다』고 집요하게 추궁했으나 정씨가 『유치한 내용이어서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완강히 버팀으로써 정황유추를 통한 심증 재확인에 그친 인상이다.
뒤이은 정수창 증인은 일해 모금의 자발성을 강조하고 설립 목적의 변경, 모금 규모에 대해 장세동·최순달 씨 쪽 입장에 가세한 바람에 정주영·양정모씨를 통해 일해의 사유화·기금 강제성의 증거를 확보했던 야당 측에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등장한 셈이 됐다.
정구호 씨의 장기집권 시나리오는 작성시기(84년6월) 가정관 변경을 통한 일해 사유화의 최초 시도시점(84년 9월)과 비슷하다는 판단에서 일해와의 연관성이 추궁됐으나 정씨가 시종 『외부협조나 의뢰가 없었으며 폐기했다』고 강변하는 통에 별 무성과.
의원들은 △직선제 억압대책 △민정당 부총재 직 설치시도 △2·12총선 직전 3차 해금 △야권분열 공작 등 이 보고서의 상당부분이 실제 5공 정치의 한가운데서 실천에 옮겨졌다고 주장했으나 정씨는 「무관함」을 강조.
정씨는 『5공 출범초기에 많은 무리를 했기에 퇴임 뒤 보복·불안 없이 물러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영향력 행사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퇴임 후 민정당 총재직을 맡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영향력행사가 안정적 단임을 위한 「중요장치」라고 주장.
정씨의 증언을 살펴보면 △연구서 작성시기인 84년은 무엇보다 단임 실천이 초점이었다 △정권 출범에 무리가 있었으므로 전씨가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선 민정당 총재직 등 영향력행사의 위치를 마련해줘야 한다 △그러나 대권이 넘어가면 영향력행사는 불가능하다고 요약할 수 있다. 결국 그의 말대로라면 전씨를 딴 생각 없이 물러나게 「고도의 정치적 속임수」를 쓰기 위한 것으로 귀착되는 묘한 역설만 확인하는 신문이 됐다.
정주영씨와 함께 일해 초창기 모금에 앞장섰던 정수창 씨는 모금의 강제성, 청와대역할, 일해의 변질, 정치자금과 특혜 등에 대해 일해 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나가 정주영씨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정씨는 모금의 강제성 여부에 대해 『일부 강제적 요소가 있었겠으나 전부가 강제라고 규정할 수 없으며 자발적으로 낸 사람이 더 많다』고 자발성을 강조했고, 일부의 강제모금에 대해서는 소극적 시인을 하는 선에서 그쳤다.
정씨는 특히 『나중에는 편하게 살기 위해 냈다』는 정주영씨의 증언에 대해 86년 정월 이사회에서 이사장 등이 앞으로 기금의 증표가 없으며 본래 연구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말하자 정주영 회장은 『1년만 더해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공개.
정씨는 『정주영 회장이 싫으면서도 말했는지 모르지만 적극적이라고 느꼈다』고 은근히 공박.
정씨는 또 『1백억 원이 쉽게 모여지니까 생각이 비약한 것 같다』며 「3차 년도 3백억 모금」목표에 의문을 체기한 정주영 씨의 증언과 달리 『처음부터 과실(이자)로 운영하기 위해선 5백원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설명.
정씨는 정관변경이 통일안보연구로 자연스럽게 발전됐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청와대의 자금모금 개입이나 지시를 부인.
정씨의 이 같은 증언에 정주영씨에게 일격을 당했던 민정당 측은 흐뭇한 표정이었는데 청문회가 끝난 뒤 『이제까지의 증언으로 일해의 성격을 마무리하려는 야당 측에 타격을 주었다』고 주장.
이날 청문회는 사안의 단순성과 증인들 역할의 상대적 경미함으로 말미암아 사실규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이유가 없었는데도 TV생중계에 홀려있는 의원들의 무분별한 중복질문으로 밤늦게까지 진행돼 청문회운영의 문제점을 여지없이 노출.
특히 증인들로부터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일부 야당의원들은 함량미달의 처차원적 질문과 의제와 관계없는 특유의 인신 모독성 공격을 계속해 다시 한번 빈축.
정일영 의원(공화)은 정구호 사장시절의 경향신문 부수를 묻는가 하면 『KBS사장으로 간 것이 영전이냐, 뭐냐』는 식의 엉뚱한 발언을 20여분간 늘어놓아 눈총. 김현 외원(공화)은 심지어 『이름이 뭐냐』고 묻고는 정씨가 『새삼스럽게 말해야 되겠느냐』고 되받은 데 대해 『생각이 안나 그런데… 「아홉 마리의 여우」(구호)에 홀린 것 같다』며 이름을 빗대 인신공격을 해 동료의원들이 민망해할 정도.
임춘원 의원(평민)은 기업가의 양식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다가 정작 정수창 씨가 답하려하자 『답변하면 평민당에 합당된 시간만 깎인다』고 거부하는 촌극도 연출.
김영배 의원(평민)도 모 여성잡지에 게재된 『유가족 일해재단으로부터 한푼도 받지 않았다』는 미망인의 수기를 장황하게 읽는 것으로 대부분시간을 할애.
심완구 의원(민주)은 자료를 잘못 해석, 『전씨가 모금 액을 지시한 것을 시인하라』고 강요한 뒤 『이렇게 밝혀졌다』고 일방적으로 선언.
청문회가 처음 시작됐을 때보다는 매우 긍정적인 차원으로 개선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일부 의원들은 청문회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좌충우돌 식의 언동을 서슴지 않고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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