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의 안정」보다 「빵의 평화」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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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르바초프」소련공산당서기장의 7일 유엔총회연설을 미국은 매우 극적인 것으로 평가하고있다.
「레이건」대통령은 「고르바초프」연설을 건설적이라고 지적하고 병력감축계획을 환영한다고 말한 것으로 「슐츠」국무장관이 이날 보도진에게 설명했다.
물론 동유럽과 아시아에 배치된 병력 중 50만 명을 일방적으로 삭감하겠다고 밝힌 「고르바초프」계획의 중요성과 영향에 대한 미 측의 구체적 반응은 펜타곤 등 미국의 군사관계기관들의 정밀평가가 선행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미국은 당장 그 삭감 규모나 배경 등을 감안, 이번 소련 결정의 중요성을 크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1차적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육·해·공군 및 기타를 합쳐 전체 병력은 5백6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소련군사력을 고려하고 주 삭감대상이 될 육군만도 1백90만 명 내지 2백20만 명 규모이지만 50만 명은 절대 적은 비율이 아니다.
더군다나 50년대 이후 소련의 병력삭감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때 「흐루시초프」가 소련군사력삭감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그의 부각으로 끝이 났고 훨씬 보수적인 「브레즈네프」로 대체된 것이다.
사실 소련의 법력 삭감문제는 어제오늘 별안간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한국동란 이후 60·70년대를 거쳐오면서 줄기차게 지속된 논쟁대상이었다. 특히 「고르바초프」는 85년 가을부터 소련군사 전략의 원칙전환을 공언해왔다. 과도한 공격병력을 「적정수준병력」에 의한 방위전략으로 바꾸어야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 등 서방은 말로만 그칠게 아니라 구체적인 삭감실적을 보이라고 촉구해봤다.
유럽 배치병력에 관한 한 소련의 대 서방우위는 현격하다. 탱크의 경우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나토의 대비는 3대1이고 병력은 2대1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지는 「고르바초프」의 이번 병력삭감결정이 지난 9월30일 소련당정치국개편과 유관한 것으로 해석하고있다. 「고르바초프」는 「그로미코」를 국가수반에서 끌어내리고 보수파 「리가초프」를 농업 상으로 전보하는 등 크렘린 수술을 단행했던 것이다. 이들 보수파들이 건재하다면 병력삭감결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병력삭감 배경은 재정난으로 보인다. 지난 수년간 소련은 석유수입이 줄고 농업생산이 감소되고 관료조직의, 비능률 등으로 경제악화에 빠져들었다. 재정적자는 계속 악화되고 규모는 GNP의 7.4%에 이른 것으로 최근 발표됐다.
미국도 재정적자로 고민이지만 소련의 대GNP 비율은 미국의 두 배에 이른다.
이 같은 심각한 경제사정 속에서 방대한 병력을 유지, 국민소득의 17∼22%를 군사비로 투입해야하는 소련으로서는 군사비 삭감은 절실한 과제인 것이다. 군사비를 줄이려면 병력감축이 불가피하고 병력을 줄이려면 상대적으로 핵무기보다 돈이 더 드는 재래식 병력 쪽이어야 했던 것이다.
재정적 측면뿐 아니라 소련은 18세 이상에 대한 의무병제도로 인해 기능·능력 있는 젊은 인력을 민간경제가 아닌 군대에 묶어놓는 현실이었다. 소련이 병력삭감을 실천에 옮기는 경우 우선 건설·철도 등 기술직 병력을 민간부문으로 돌리는 것부터 착수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고르바초프」가 만약 크렘린 보수파와 특히 군부의 강력한 저항을 극복, 삭감을 실현한다면 국내경제 회복과 이미 고양돼 있는 그의 국제적 지위는 매우 신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피차 설전대상에만 오를 뿐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유럽주둔 재래식 무기삭감에 관한 동서협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소 병력삭감계획에 대한 미 대응과 관련, 「레이건」은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그것은 소련이 취하고자하는 일방적 결정』이라고 일단 못 박았다. 유엔 연설 한마디만으로 성급한 반응을 보일 수 없다는 게 미 측 자세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이 지금까지 NATO병력삭감의 조건으로 소련 측 우위제거를 요구했던 것을 감안할 때 재래식 병력삭감에 관한 서방협상에 진전의 계기가 마련될 가능성이 커졌다. <워싱턴=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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