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 없는 비행기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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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혼여행길에 오른 신랑·신부가 첫날밤을 예정에 없던 엉뚱한 장소에서 화가나 보내게 된다면 이를 단순히 낭패라고만 할 것인가.
그 같은 봉변이 당사자의 불찰이 아니라 관련 서비스업체의 무책임한 착오에서 비롯되었다면 결코 금전만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이없는 피해를 과연 누가 어떻게 보상해야 옳을까.
20일 오후 김포와 김해공항에서 모두 1백70여 쌍의 신혼부부가 좌석 지정이 안된 대한항공 비행기표를 사들고 제주로 신혼여행을 떠나려다 바로 그 같은 날벼락 봉변을 당했다.
이들 신혼부부들은 모두 여행사에서 『좌석은 걱정 말라』는 말을 듣고 대한항공 표를 예매했었다. 정작 공항에서 그 표를 내밀었으나 좌석배정을 못 받아 3시간 넘게 항의소동을 벌였다. 결국 일부는 행선지를 바꾸었고, 일부는 여행사가 안내한 부근의 호텔에서 첫 밤을 보낸 뒤 다음날 비행기를 탔다.
바로 2주전인 6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30여 쌍의 신혼부부가 똑같은 낭패를 당했고 보면 대한항공 여객기의 좌석 초과예약은 성수기마다 예사로 반복되는 만성적 부조리 같다.
예약남발의 1차 적 책임은 좌석을 확보하지 못한 채 표를 마구 판 여행사의 장삿속에 있다.
대한항공 측은 이 같은 이유로 예약 표를 남발한 여행사에 대해 판매대리점 계약을 취소 하는 등 시장질서를 바로잡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부조리관행의 원천적인 책임은 아직까지 국내 항공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대한항공이 져야하며 항공시장의 변화와 고객수요에 걸맞게 대한항공은 획기적인 서비스개선을 단행해야 한다고 본다.
항공수요는 계절·요일·노선에 따라 다른 어느 교통수단보다도 격차가 큰 반면 공급의 탄력성은 상대적으로 작다.
한정된 좌석을 수요에 대응하여 적절히 운영함으로써 경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가 「예약」이며 「예약」제도의 안전성은 항공사의 신뢰와 직결된다.
탑승률을 높이기 위해 좌석을 초과하는 「오픈 티깃」의 발매도 그 같은 항공 시장의 특수성에서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대한항공기의 사례처럼 30쌍, 1백70여 쌍이 대량으로 자주 초과 발매되는 상황은 「예약」제도 자체를 무의미하게 하는 공급자의 횡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같이 예약 표 난매 행위가 벌어지는 배경에는 대한항공 측이 그 동안 정기 편은 가급적 늘리지 않으면서 특별 기를 공급해온 관행에 있다는 것이 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20일의 경우 국내선 제주항 정기 편은 16편 3천여 석인데 비해 특별기는 8편에 2천여 석 되었던 것이 그 같은 실례다.
국내 항공승객은 80년대 이후 폭발적 증가세를 보여 지난해의 경우 전년 보다 23·6%가 늘어 5백만 명 선에 육박했다. 제주·부산 등 일부노선은 만성적인 공급부족 사태에 있다.
그런데도 대한항공은 임시 미봉 주먹구구식의 특별 기 위주 장삿속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컴퓨터 시대에 걸맞지 않는 경영방식에도 문제는 있다. 12월중 운항을 개시할 제2 민항의 출발과 함께 국내 항공업계의 운수서비스도 차원이 달라져야 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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