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증언과「진실」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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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때 서술 퍼렇던 사람들, 권력의 그늘에서 단맛을 보던 사람들이 줄줄이 국회에 불려나와 증언대에 서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4·19후 내노라 하던 사람들이 굴비 두름 엮이듯 법의 심판대 앞에선 이래의 진풍경이다.
지난날의 부정과 비리를 따져들어 가는 모습은 많은 백성들에게 스릴 있는 구경거리를 제공했음에 틀림없다. 역시 국정감사는 있고 볼일이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오게됐다.
숱한 부정과 폭압의 실례가 폭로되었고, 그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드러난 것도 적지 않다.
국정감사는 끝났지만 5공 비리 특위를 비롯한 여러 특위의 활동과 각종 국정조사·청문회 등이 이어져 국회증언대는 계속 붐빌 전망이다.
따라서 이 증인신문과정에서 어떤 전통을 수립하느냐 하는 건 새로운 국회의 바른 위상정립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짧은 국정감사기간 만으로 아직 결정적인 평가를 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증인신문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증언대에 선 증인이나 신문을 하는 국회의원 모두에게서 몇 가지 미흡한 점이 눈에 띈다.
먼저 증인 쪽의 문제다. 사실을 진술하려고 애쓴 사람도 더러 있지만 사실을 호도하려는 사람이 더 많았다.
호도하는 수법도 가지가지. 첫째가『모른다』『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는 수법이다. 비리혐의로 증언대에 선 사람들은 거의 하나같이『모른다』『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면 의원들이 꼼짝 못할 사례를 들이대거나 다른 증인들의 상충되는 증언을 끌어내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해 오히려 면죄부만 주는 꼴이 됐다는 비평을 들었다.
둘째는 아예 무턱대고 사실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수법이다. 이런 잡아떼기 수법은 특히 형사사건을 직접 다뤄봤던 수사관들의 장기 같아 보인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문 경장이 그렇더니 김근태씨 고문사건 관련 경찰관들이 또 혐의사실을 완강히 잡아떼고 있다. 객관적으로는 고문을 안 당해본 사람이면 그렇게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가 없을 것 같은 김씨의 피해증언을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잡아떼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셋째는 사실의 줄거리는 시인하는 듯 하면서도 설득력 없는 소신을 내세워 궤변을 농하는 수법이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책임을 모두자기가 뒤집어쓰는 순교자연하는 태도를 취한다.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거나 잡아떼는 것보다야 백 번 나아 보이나 혼자 한 일이 아닌 것을 혼자 떠맡겠다는 것도 역시 실체적 진실발견을 가로막는 행위에 다름없다..
그리고 언론 통폐합과 공직자 숙정 증인 신문과정에서 보았듯이 객관성이 없어 조금만 따져들면 밑천이 드러나는「소신」에 매달리는 것도 딱할 뿐이다.
그러면 증인을 불러내 신문을 하는 국회의원 쪽은 어떤가.
대체로 증인신문에 대한 기본인식과 준비가 부족하고 행태가 너무 권위주의적인 면이 두드러져 보인다.
증인신문은 어떤 사실을 밝혀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데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듯한 느낌이다. 한때 성역처럼 치부되던 아무개를 증인대에 세워 호형을 한다는데 너무 중점을 두다 보니 그 증인을 통해 구체적으로 진실을 밝혀내는 목이 소홀해진 듯 싶다.「거물」증인의 경우 나와준 것만 대견해서인지『모른다』『기억이 안 난다』고 해버리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꼼짝못할 반론을 제기할 만도 한데 증인을 불러내는 노력에 비해 사실을 적시해 추급하는 기세는 상당부분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더욱 보기 거북한 것은 의원들의 권위주의적인 행태다. 수감자와 증인은 국회의원의 부하도 아니고 죄인도 아니다. 그런데도 상사 대접받기를 당연시하고 조금만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말의 내용보다는 태도를 문제삼아 윽박지르고 호령을 하는 풍경이 자주 눈에 뛴다.
의원들이 수감자나 증인의 인격을 모욕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이에 반발하면 국회모욕이 된다. 이래서야 너무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가.
증언거부와 위증에 대한 처리에도 꼭 유념해야할 점이 있다. 자기 부죄를 강요하지 않는 게 형사법의 원칙이다.
우리헌법에도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12조 2항).「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에도 형사소송법을·원용해 자기 또는 근친자가 형사소추나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이 발로될 염려가 있거나 업무상 지득한 비밀의 경우 선서·증언·서류 제출을 거부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런 경우에는 거부하지 않고 증언을 해도 위증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외국 판례마저 있다.
이런 법 규정이나 판례는 국회의 진실발견 노력에는 제약요소다. 그러나「인권보호」라는 더 높은 차원의 불가피한 제약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따라서 국회로서는 국회모욕·위증죄 등의 고발 또는 처벌을 무기로「네 죄는 네가 알렸다」는 식의 증인신문에 매달려서는 안되겠다. 물론 자기 관련 사항이라도 증언거부나 발뺌 또는 거짓증언을 하는 증인이 정치·도의적으로 비난을 받고 상처를 입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한다.
상당기간 계속될 증언정국이 진실발견으로 연결시키려는 의원들의 보다 충실한 준비와 태세를 기대한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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