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야할 악법 개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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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법사위의 청송 감호소 감사와 미결수 탈주 인질사건을 계기로 사회보호법과 안전법 등의 개폐논의가 다시 일고 있다. 이들 관계법의개정 또는 폐지에 관한 주장은 대한변협 등이 오래 전부터 제기해왔고, 지난번 새 국회 구성이후에도 야권은 물론 여당에서도 이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정비대상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이들 문제의 법률과 제도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사법권독립을 원천에서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이라는 점 외에도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고 그 폐해와 부작용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문명세계의 국가로서 이런 법률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 못한 노릇이다.
우선 사회보호법만 하더라도 맹점 투성이다. 예컨대 이 법 제20조는 보호감호 10년 해당자는 법관의 재량권 없이 검사가 요청하는 대로 본형 외에 징역형과 다름없는 보호감호를 당연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형벌권은 사법부에 있고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사항은 사법적 판단에 의하도록 되어있는 헌법과는 정면으로 상치된다.
이를테면 사회보호법상의 형식요건에 해당되면 법관은 양형 기준이나 정황의 참작 없이 무조건 7년 아니면 10년의 감호 처분을 내려야한다. 사회보호법의 이 같은 경직성으로 지난번 국회 법사위의 현장감사에서 드러났듯이 여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83세의 노인까지 청송 감호소에 수감한 기막힌 현상도 파생되는 것이다.
사회보호법 제1조는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자를 교화해 사회복귀를 촉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관이 피고인에게 본형을 선고할 때는 사회복귀를 전제로 한 교화기간까지도 감안해 양형올 정하는 법이고, 교도행정과 행형의 근본 목적이 교화와 교도인데 2중으로 구금시켜 교화시킨다는 건 여간 우스광스런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재범의 위험 가능성을 미리 예측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범죄와 전과를 숫자만으로 셈해서 재범의 위험이 있다고 예단 해 7년 또는 10년이란 장구한 기간을 현대판 「삐삐용」이라는 감호소에 가두어두는 것은 여간 가혹한 일이 아니다.
양형을 정할 때는 범인의 연령이나 성행, 지능과 그가 처한 환경과 동기를 관찰하고 범죄인의 의식과 그러한 의식을 키워준 토양도 연구해 정상을 참작해야 마땅하다. 형별은 사회가 공감한다고 해서 행위 이상으로 징벌을 가해서도 안 되고 그 이하가 되어서도 재판의 공정성을 상실한다.
법과 재판의 생명이라 할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신뢰가 떨어지고 법 경시와 재판의 결과를 인정치 않으려 들고 오히려 결과에 반발하는 무서운 폐해까지 낳게 마련이다. 이는 이번 탈주범들의 예에서도 익히 알 수 있지 않는가.
사회보호를 위해 보호 감호제도가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면 이 제도의 존속보다 현재의 교정행정상의 미비점을 크게 보완하고 교정 공무원들의 자질을 향상시기고 시설을 확충하고 운영을 보다 충실히 해 본형 기간만으로도 사회복귀가 가능하도록 하는 게 올바른 정책의 방향이다.
사회안전법 역시 입법의 동기나 목적이 반정부 인사들의 탄압과 유신정권의 존속을 위한 것이었다는 비난을 받았거니와 인신의 장기 구금을 의미하는 보안 감호 처분을 그나마 법관이 아닌 법무부가 내리도록 되어있다. 이는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인 삼권분립주의와 기본권존중주의에 어긋난다. 민주국가에서「행정구금」이 가능토록 되어있는 법률이 존재한다는 것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같은 법률을 그대로 두고서는 법치니, 민주화니 하는 구호나 약속은 공허할 뿐이다. 국회는 다른 법의 정비에 앞서 악법의 개폐작업부터 서둘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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