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수의 죽음앞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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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7일 오후 9시 서울 현저동 세란병원 영안실.
지난 8월 15일 대학 후배의 부탁으로 최열곤 당시 교육감에게 1천만원을 건네주고 인사를 부탁해 뇌물알선 및 중재협의로 불구속 임건된 뒤 『무슨 낯으로 학생들을 대하느냐』며 괴로워 하다 끝내 자살해 버린 여의도고 교감 윤종소씨(55)의 빈소를 찾은 동료 교사들은 모두 허탈한 표정이었다.
『더 큰 죄를 짓고도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 태반인데….』 영정 앞에서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아내던 한 여교사는 끝내 고개를 돌렸다.
교직생활 37년인 윤 교감이 여의도 고에 부임한 것은 지난해 3월.
시도 쓰고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윤 교감은 금방 학생들과 교사들 모두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생님」이 됐다.
동료 교사들의 집안 대소사에 빠짐 없이 참석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 주던 것도, 학생들이 고민거리를 듣고 가장 먼저 찾아갔던 것도「교감 선생님」이었다.
『가까운 후배가 부탁을 해왔는데 들어줄 수도 안 들어 줄 수도 없다며 며칠을 고민하셨어요. 무슨 내용인지 알았으면 그때 말렸을 텐데….』
남편의 자살 소식을 듣고 실신해 버린 어머니 대신 빈소를 지키는 삼남매의 오열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한평생 교단을 지켜오다 저지른 「한번의 실수」를 끝내 자살로 제자들 앞에 속죄한 어느 교사의 죽음. 몰염치가 판치는 세상에 던져진 그의 죽음은 더욱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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