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이한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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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첫번째 국제대회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한섭(이한섭)은 남자양궁대표팀중 가장 많은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낸 인간승리의 장본인.
이한섭은 고3시절인 84년 LA올림픽 대회직후 대표팀 개편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았으나 선수촌 입촌후 급격한 슬럼프에 빠져 5개월만에 대표팀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어야했다.
대표팀 탈락후 부산동의대에 진학했으나 정신적인 안정을 찾지못해 방황을 거듭했으며 한때 부상까지 겹쳐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청천벽력같은 주위관계자들의 비난을 견디지못해 휴학계를 제출해야만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좌절하고 포기한다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만다는 아버지 이해중씨(51)의 간곡한 설득에 따라 이는 다시 활을 잡았지만 마땅히 연습할 장소나 자신을 지도해줄 코치마저 없어 결국 군(군)에 입대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택한 길이었지만 군생활은 이에게 제2의 인생을 개척케한 전환기가 된다.
입대전 양궁선수 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상무양궁팀에 발탁됐고 여기서 절제된 생활과 함께 강인한 정신력을 몸에 익히면서부터 이한섭은 정상적인 페이스를 되찾게 되며 자신이 전성기를 이뤘던 대표팀선발당시의 기록을 웃도는 기량향상을 이룩하게 됐다.
3년간에 걸친 길고도 험난했던 역경의 시절을 극복해낸 이는 이때부터 승승장구, 금년초 실시된 전반기 대표평가전에서 기라성같은 현역대표선수들을 물리치고 국가대표로 발탁됐으며 올림픽출전 3명을 뽑는 후반기 평가전에서도 놀라운 저력을 보이며 아시안게임 4관왕 양창훈(양창훈)과 신예 이경출(이경출)등을 막판에 따돌리고 올림픽티킷을 따내는 행운을 잡게됐다.
부산해운대중 1년때인 79년양궁에 입문했으며 해운대고를 거쳐 동의대 2년때 휴학하고 현재 상무에 소속돼 있다.
자세가 안정돼있고 슈팅감각이 뛰어나지만 체력이 약하고 기록의 기복이 심한게 최대약점.
이같은 약점때문에 준결승에서 자칫 한국대표팀을 탈락위기로 몰아넣기도 했으나 결승전에서는 막판에 저력을 과시, 팀에 금메달을 안겨 일희일비(일희일비)의 주인공.
1m78cm·70kg으로 독실한 불교신자다.
89년9월 전역할 예정으로 정신집중을 위해 낚시를 취미생활로 즐기고 있으며 생선회를 특히 좋아한다. 수명이 긴 양궁수가 되는게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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