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존의 계기로 삼자-스탠드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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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구나. 티없이 맑은 가을 하늘이 눈부시게 찬란하고 추석을 맞아 아름답게 차려입은 아낙네들의 한복자락이 가을바람에 더 없이 사랑스럽다.
서울 올림픽 행사가 추석을 안고 있어 추석연휴를 맞은 시민들이 고향을 찾는 길에서, 조상의 성묘를 찾는 길에서 아니면 모처럼의 운동장을 찾는 길에서 올림픽 대화가 풍성하구나. 특히 추석날에 안겨준 유도의 금메달은 금년 농사의 결실만큼이나 반갑고 흐뭇하구나.
서울 올림픽을 치르는 이 계절에 하늘은 단군 이래의 대풍년을 우리 국민에게 안겨주고 있다. 정말「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감회가 뼈에 사무친다. 농사든, 운동이든 성의를 다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소박한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올림픽의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올림픽 행사가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자존심에 불을 붙인 것이다.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을 지켜보던 우리 국민들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이렇게 위대하고 자랑스러울 줄 미처 몰랐다.
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관람하던 외국언론들은 입을 맞추어 한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서울 올림픽은 우리 국민에게나 외국언론에게나 문화적 차원에서「올림픽 혁명」인 것이다.
우리 민족은 그 동안 관념적으로만「우리는 위대한 문화민족」이라고 생각해봤지만 서울올림픽을 통해 이렇게 직접 우리민족 문화의 위대함을 몸으로 체험하고 가슴으로 느껴본 적 은 과거에 없었다. 이것은 돈으로 계산될 수 없는 서울 올림픽의 위대한 성과인 것이다.
이 역사적 행사를 통해 우리민족은『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되었다고 본다. 이 행사를 치르면서 우리민족도 이제는 세계의 선진국들과 당당히 맞서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만 7년 전 올림픽의 서울개최가 결정된 순간부터 오늘 이 시점까지 얼마나 많은 국내외 인사들이『한국은 올림픽을 개최하기 어렵다』고 말해 왔는가.
우리 민족은 그 동안 역경과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오늘을 준비해왔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우리 민족은 서울 올림픽을 올림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행사로 착실히 진행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서울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마음의 끈을 한치도 풀지 말아야한다. 좋은 일 다음에는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속담이 있지 않는가. 복싱 경기장에서의 난동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민족의 자존심에 먹칠을 한 무책임한 일이었다.
경기장의 빈자리들을 가능한 한 메워주자. 만일 빈자리가 예상되면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그 자리를 우리 사회의 인간 상록수들에게, 우리 사회의 인간문화재들에게, 그리고 올림픽행사를 위해 헌신한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주자. 특히 서울 올림픽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실업계 고등학생들에게 올림픽 관전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응원에서는 가능한 한 민족의 자존심을 살려 품위 있고 절도 있게 하도록 하자. 우리 선수의 선전하는 장면에서는 물론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의 뛰어난 기량에 대해서까지 침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최근 미국 언론들의 편파적 보도 태도가 우리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기장에서까지 불필요한 민족감정을 나타내지는 말자. 미국 선수라고 해서 너무 지나친 응원도 금물이지만, 소련 선수라고 해서 너무 편파적 응원 역시 우리민족의 높은 자존심에 부합되지 않는다.
미국 선수의 불상사는 우리 나라의 법에 따라서 공정하고 신중하게 처리돼야지 만의 하나라도 여론재판의 방향으로 몰고 가서는 안될 일이다. 특히 우리 나라의 언론은 이 사건과 관련해서 반미감정을 유발하지 않도록 책임 있는 보도를 해야할 것이다.「벤·존슨」의 약물복용 소식은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올림픽 행사가 민족사에 빛나는 중차대한 과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나라의 방송 채널들이 모두가 올림픽 중계 쪽으로만 몰리는 태도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평가된다.
우리 나라의 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들을 방송하기 위해서 채널들을 총동원하는 것은 그런 대로 이해는 되지만 KBS-1, KBS-2, 그리고 MBC가 모두 올림픽 중계를 위해서 총동원되는 것은 조금 지나친 태도라고 생각된다.
KBS-2 정도는 대단히 중요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정규방송을 해나가는 것이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시청자 계층의 권리를 위해서나 외국인의 평가를 위해서나 좀더 떳떳한 일이라 생각된다.
비 인기종목의 경기를 위해서는 좀더 많은 관심을 보이도록 하자. 그리고 비 인기종목의 경기를 우승의 문턱까지 올려놓은 임원·코치, 그리고 선수들에게는 국민적 성원과 격려·를 아낌없이 보내자.
특히 유도의 금메달, 체조의 동메달, 그리고 필드하키와 핸드볼의 선전하는 선수들에게는 마음으로부터의 갈채를 보내도록 하자.
올림픽의 성공적인 진행을 위해서 노력하는 숨은 일꾼인 자원봉사자들에게 뜨거운 찬사를 보내자. 그들의 숨은 노력이 없으면 이 역사적 과업은 결코 이렇게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 역사적인 서울 올림픽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한번 더 마음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하자. 그래서 이 행사를 민족자존의 시금석이 되도록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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