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알차고 재미있고…'애들 책' 영양 만점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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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성룡 기자]

어린이.청소년 교양서가 쏟아지고 있다. 다루는 분야도 역사.철학.문학 등 인문 쪽은 물론 과학.수학.한자.영어 등 교과목까지 영역을 성큼 넓혀가며 진화하고 있다. 교양서들은 대개 이야기 형식을 통해 지식 교양을 알기 쉽게 전달한다. 또 '살아있는 교과서'시리즈처럼 학교 교육에서 미진한 부분을 채워주려는 기획도 있다. 이와 함께 5~7세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생을 겨냥한 학습만화도 강세다.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교양서 붐의 큰 요인의 하나는 학부모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논술을 꼽을 수 있다. 읽기와 쓰기, 통합적 사고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독자들의 수요가 읽기물(동화나 소설)보다는 교양서 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5월 어린이날.가정의 달을 맞아 아동.청소년 교양서 붐 현상을 주요 도서들과 함께 짚어본다.

지난 달 출간된 학습교양서 '써프라이즈 시리즈-오딧셈의 수학대모험'은 나오자마자 교보문고 아동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 책은 엉뚱한 천재 소년 오딧셈이 여자친구 이프네와 함께 흥미진진한 모험을 벌인다는 내용 안에 수학 원리와 개념을 자연스럽게 녹였다. 오딧셈이 분수(分數)를 이용해 로마 병사들에게 피자를 나눠주고, 최소공배수를 가지고 죽음의 미로를 탈출하는 식이다.

이 책의 제작 과정은 요즘 잘 팔리는 어린이.청소년 교양서는 대부분 철저한 기획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는 당초 '초등학교 3년생부터 중1년생까지 읽을 수 있는, 모험을 통한 수학 이야기'라는 목표를 잡았다. 이혜경 편집팀장은 "아이들을 위한 영화 한 편 만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당연히 필자 한 명에게 자료 수집, 내용 구성, 집필 등을 맡기는 기존 방식은 피하기로 했다. 수학 콘텐츠를 담당할 사람으로는 '우리 겨레 수학 이야기'(산하)를 쓴 안소정씨를 데려왔다. 안씨가 교과 과정을 참고해 만든 초안은 스토리 작가 강상균씨에게 넘겨졌다.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등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던 강씨는 여기에 살을 붙여 이야기로 꾸며냈다. 일러스트는 만평 작가인 박철권씨가 담당했다.

"수의 발생을 다룬 앞 부분은 내용상 중요하긴 하지만 도입부로서는 좀 처진다. 잘라내자""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등장 인물 이름은 좀 튀게 만들자"는 식의 토론이 이어졌다. 위즈덤하우스는 원고가 완성된 뒤 '쥬니버(jr.naver.com)'에 카페를 개설, '어린이 도서탐험대' 50명을 모집했다. 도서탐험대는 책 내용은 물론 책 표지까지 미리 보고 꼼꼼하게 모니터 작업을 했고 이는 수정 과정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총 4권이 될 '오딧셈…'을 만드는데 든 시간은 2년 여. 1억5000만원 가량의 제작비가 들었다. 총 20억여 원의 제작비가 소요될 '써프라이즈' 시리즈는 앞으로 국어.과학.영어.지리.사회 등에서 46권이 나올 예정이다.

이렇듯 요즘 잘 팔리는 어린이.청소년 교양서는 다 이유가 있다. 억대의 예산과 수 년간의 제작 기간은 기본이다. '대충대충'은 있을 수 없다. 왜? 이팀장은 "부모나 자녀 모두 눈높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준비된 책이 아니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올 3월 선보인 '살아있는 과학 교과서'(휴머니스트)도 예외가 아니다. 이 책은 한국사.한자.세계사에 이은 '살아있는 교과서' 시리즈 네번째다. 4년에 걸쳐 5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됐고 제작비로 4억원을 썼다. 제작비의 절반 가량이 그래픽.사진.일러스트 등 시각 자료에 쓰인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한필훈 주간은 "외제 그래픽 자료를 수입하거나 평범한 삽화를 쓰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산 그래픽'을 시도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밋밋한 과학 교과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영상세대들에게 과학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가르쳐주겠다"는 시도였다. 디자인 책임자는 영미권의 유수 출판사들이 낸 과학 도서의 그래픽 자료를 일일이 촬영한 뒤 일러스트 담당자들에게 보냈다. 1컷을 주문할 때 첨부한 참고 자료만 20~30컷이었다. 그리고 요구했다. "이것을 모두 참고한 뒤 이것과 다르면서 이것보다 낫게 만들어봐라."

필자인 중고등학교 교사 네 명과 과학전문지 대표와 편집장 등으로 구성된 편찬위원 다섯 명은 이제 회의라면 고개를 내젓는다. 집필 전에만 회의를 30여 차례 했다. '통합과학'을 지향하는 책이니만큼 단원마다 필진 전원이 머리를 맞대야 했다. 원고가 완성된 후에는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와 편집진이 다시 30여 차례 모였다. 글과 시각 자료를 유기적으로 잘 엮기 위해서였다. 출간 한 달도 안돼 '살아있는 과학 교과서'는 벌써 4만부를 넘겼다. 아동.청소년 교양도서는 지금 진무럭무럭 크고 있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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