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미친' 공학자 최동순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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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공대 시스템정보경영과 최동순(46)교수는 '축구에 미친 사람'이다. 독학으로 축구를 배운 그는 자비를 들여 방학 때마다 어린이 축구교실을 운영한다.

자신이 감독으로 있는 클럽의 승률을 높이기 위해 프로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두시간 전에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의 워밍업과 경기 내용을 꼼꼼히 메모하곤 한다.

올해 6월 최교수는 자신이 전공한 공학 이론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한 축구 포메이션'이란 논문을 발표해 한국창조공학회지에 이를 실었다. 공학자가 쓴 국내 최초의 축구 이론 논문이다.

복잡한 수식(數式)을 빼고 내용을 요약하자면 '제품 생산 공정에서 한 곳의 작업시간이 지연되면 전체 공정이 지연되고 나쁜 영향을 준다. 축구에서는 선수 1인당 책임져야 할 공간의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최교수가 창안한 것이 '듀얼 헥사곤(dual hexagon) 포메이션'이다.

두 개의 육각형이 부분적으로 겹친 모양인 이 포메이션의 특징은 ▶경기장을 11명의 선수가 거의 균등하게 분할해 책임진다. 따라서 선수들의 피로를 덜고 효율적인 경기를 할 수 있다.

▶각 포지션이 인접 포지션과 평행하지 않고 삼각형 또는 다이아몬드형을 이룬다. 따라서 포지션 체인지와 임무 협조가 원활하게 이뤄진다. ▶중앙에 네 명의 선수를 배치해 가운데를 두텁게 한다. '중앙이 강해야 이긴다'는 것은 축구의 상식이다. ▶볼을 빼앗겨도 위험도가 낮은 전방은 선수 배치를 넓게 하고, 위험도가 높은 후방은 좁게 한다 등이다.

최교수는 "토털사커가 대세가 된 현대 축구에서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의 3선으로 포지션을 고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위치'보다 '역할'을 강조하는 새로운 포지션 명칭도 제안했다. 최종수비수는 선수들을 총지휘하는 컨덕터(conductor), 수비형 미드필더는 공격 방향과 옵션을 결정하는 컨트롤러(controller)라 이름붙였다.

최교수는 "이 논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임상시험 결과가 없다는 것"이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이 포메이션을 제대로 가동하려면 각 포지션에 고른 기량을 지닌 선수가 있어야 하는데 순수 아마추어 팀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주=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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