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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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장애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것은 선진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지난 7월 「장애자 복지대책기구」를 대통령직속 기관으로 설치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고, 최근엔 3백명이상의 기업체는 종업원의 2% 범위 안에서 의무적으로 장애자를 채용해야 한다는 「장애자 의무 고용제」실시를 노동부가 밝혔다.
내일이면 제1회 전국장애자 신앙대회가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리게되고 서울올림픽이 끝난 2주뒤엔 제8회 서울장애자올림픽이 개막된다. 장애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확산하고 그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안겨 줄 좋은 계기가 찾아온 것이다.
신체가 부자유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의 그늘 속에서, 사회의 편견과 냉대 속에서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장애자에게 기왕 깊이 관심과 애정을 보이려고 한다면, 우리는 보다 조직적이고 장기적 대책 마련을 충고하고 싶다.
장애자에 대한 대책방향은 복지정책과 그들에 대한 정상인의 시각조정이 함께 이뤄져야한다. 장애자 87%가 후천성 질병 또는 교통사고에 의한 피해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장애자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나누어야 한다.
비록 장애자 고용을 의무적으로 기업에 강요한다 할지라도 장애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없을 땐 기업주 또는 동료가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장애자 사원을 몰아낼 수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장애자 자신도 신체적 조건과 능력을 무시한채 일자리만 얻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도 금물이다.
따라서 단순노동으로 그칠 작업장이 아니라 전문인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줄 수 있는 장애자 직업훈련정책이 정부시책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60여 장애자 작업장이 있기는 하지만, 그 숫자가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장애자의 신체와 능력을 감안한 전문 노동력의 양성이라는 목표로 그 기구는 더욱 확대 개편해야할 때가 되었다.
모처럼 실시되는 좋은 제도라 해도 시행과정에서 효과를 얻지 못할 때는 기억은 기업대로 이들을 더욱 편견시할 터이고 장애자는 더욱 큰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동정과보호의 차원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고 함께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기업가와 장애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기업주는 장애자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하고 장애자는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피땀으로 길러야하며 정부는 이들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특수직업 훈련원을 확대해야한다.
올림픽 마라톤 2연패를 기록했던 맨발의 마라토너 「비킬라· 아베베」는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지만, 불굴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나 장애자 올림픽의 양궁선수로 출전해서 금메달을 땄다.
신체적 부자유만으로 좌절하지 않고 이를 극복한 인간승리를 우리는 도처에서 보고 듣는다. 중요한 사실은 인내와 노력으로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려고 몸부림치는 장애자들에게 애정과 박수를 보낼 줄 알고 이들에게 용기와 웃음을 보낼 줄 아는 사회적 분위기가 충만할 때 수백 수천의 「아베베」가 우리 주변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체부자유아나 정박아시설을 지으려 할 때마다 『집 값이 떨어진다』『자녀교육에 해롭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반대하는 사회는 「함께 사는 사회」가 아니다.
『한 나라의 문화와 복지수준은 장애자를 위한 복지시설과 그 나라 국민의 인식도에 달려있다.』 횔체어를 타고 4선의 대통령직을 훌륭히 수행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튼」의 말을 우리 모두 새롭게 기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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