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규격화된 시스템은 없었지만 우리의 매관매직도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았다. 특히 구한말에 극에 달했다. 황현이 '매천야록'에서 "수령.진장을 비롯해 감사.유수.병사.수사 등 외직은 모두 팔려 나갔다"고 개탄할 정도였다. 1급지 감사는 20만 냥, 2급지면 10만 냥, 1급 군수만 해도 5만 냥을 바쳐야 발령이 났다고 황현은 증언한다. 먼저 돈을 냈더라도 나중에 더 많이 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관직에 제수됐기 때문에 부임 길에서 말을 돌려야 하거나 부임한 달에 바로 해임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거꾸로 관에서 벼슬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원납전(願納錢)이 그것이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관직을 내리고는 막무가내로 돈을 요구했다. 강씨 집에서 "봉구야"하고 개를 부르자 '강봉구'란 이름으로 참봉 벼슬이 나왔다는 우스개도 전한다.
오죽하면 '분경금지법'이란 게 있었을까. 분경(奔競)이란 인사청탁을 위해 권세가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말한다. 4촌 이내의 친척이 아니면 하급관리가 상급관리의 집에 출입하는 것을 금했다. 위반 사실이 밝혀지면 중형은 물론 공직에서 영원히 퇴출됐다. 분경죄인은 실제 인사청탁을 한 죄인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인사청탁죄는 곤장 30~80대에 그쳤지만 분경죄인은 장 100대에 유배 3000리라는 엄벌에 처했다(경국대전). 갈수록 유명무실해졌지만 초기엔 조문도 못한다는 민원이 발생할 정도로 강력히 시행됐다.
현찰이 담긴 사과상자가 또 나왔다. 이번엔 시장 공천 대가란다. 사과상자 시장이 자기를 위한 사과상자를 또 만들 거라는 사실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정치인들의 사과상자사용금지법 또는 자동차트렁크개폐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모양이다.
이훈범 week&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