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부장 테러범 잡히자 경찰이 "생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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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장 장성들 수사 진언>
군당국이 오 부장 사건 재수사에 나서게 된 것은 결정적인 제보 외에도 국방부 및 육본의 소장장성들이 예하부대의 보고에 의심 가는 부분이 많다고 군자체수사를 진언했다는 얘기다.
이들 젊은 장군들은 진실이라면 결코 은폐될 수 없으며 사실이 아니라면 의혹을 떨치고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확실히 규명해야 한다고 고위층에게 건의했다는 것.
비등하는 여론과 야당·언론사의 성명 등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군 내부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자 오 국방장관은 23일 이종구 육군 참모 총장에게 『사건전모를 철저히 파헤치라』고 구두지시한데 이어 24일에는 정식으로 명령서를 하달.
군수뇌부의 기밀회의가 반복되면서 국방장관 등의 단호한 의지를 확인한 육군수사당국은 24일 오후 『박철수 소령과 그 부하들의 범행이 틀림없다』는 제보가 접수되자 전면수사에 따른 부하들의 사기저하를 걱정하면서도 즉각 헌병 및 수사관을 동원해 박 소령 등을 검거, 자백을 받는데 성공.

<문책선 싸고 설왕 설래>
오 부장 피습사건 범인이 현역 군인으로 밝혀지자 군에서는 상층부 어느선까지 관련
됐는지, 관련자가 드러날 경우 문책은 어느선까지 될것이냐를 놓고 설왕 설래.
범행과 관련, 당초에는 『박 소령 등이 충동적으로 저지른게 아니겠느냐』 는 풀이가 우세했으나 사건의 성격에 비춰『그 윗선까지가 관련된게 확실하다』 는 견해가 지배적.
25일 자정이 넘도록 수사결과를 지켜보았던 군수뇌부는 박 소령이 자신의 단독 범행이라고 「우기고」 있고 박 소령의 직속상관인 이모 준장도 무관함을 극구 주장하더라며 수사가 진전이 없음을 암시.
한 범죄수사단 관계자는 『특수교육을 받은 범인들이어서 의리를 생각하는 것 같더라』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 추후 재론의 소지를 막기 위해서도 사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다짐.

<국방장관 등 회동 잦아>
이번주 들어 오자복 국방 장관과 이종구 육군 참모총장의 두 차례에 걸친 비밀회동에 이어 국방부 조사대장·육본 헌병감·법무감·범죄 수사단장 등 수사당국자들의 기밀회의가 거듭되면서 국방부 및 육본 주변에는 『정말 군이 개입된게 아니냐』는 얘기가 무성.
한 관계자는 5616부대측의 부인이 완강하고 『진짜 전문가들이 그렇게 어수룩히 일을 처리하지 않을 것 같아 혹시 다른 부대가 관련된 줄 알았다』고 뒤늦게 토로하기도 했는데 24일 밤 처음부터 의심을 받아오던 정보부대 요원들이 진범으로 체포되자 『아니 그렇게 일을 했다니…』하며 믿기지 않는 표정.
또 다른 관계자는 『한마디로 잘못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기사를 쓰면 흥분한 젊은 군인들이 또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른다. 60만명 중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도 혼을 내주고 싶은 마음』이라며 오 부장 기사에 대한 깊은 불만을 토로.

<5공형 수사태도 "불만">
그동안 오 부장 피습사건 수사진전 여부에 「모른다」로 일관해오던 강남 서수사관들은 범인들이 검거된 직후 『그동안 보안하느라 진땀을 뺐다. 오리발이 수백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면서 『앞으로 수사보다는 보안에 더 주력해야하는 5공형 수사태도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고 보안과 보고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상급자들에 대해 은근한 불만을 표하기도.

<현장검증 뒤늦게 알아>
현장 검증을 실시한 육군 범죄 수사단은 이날 현장 검증을 한다는 사실을 경찰에 전혀 통보하지 않은 채 단독으로 실시해 이 사건을 처음부터 수사해온 경찰의 원성을 사기도.
『군에서 현장 검증을 실시하는 것 같다』는 아파트 경비원의 제보를 받고 뒤늦게 달려간 수사경찰은 현장주변에서 몰래(?) 사진만 찍었을 뿐 현장 검증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경찰의 한 수사관계자는 『군이 이렇듯 경찰을 무시하니 그 동안의 수사가 힘들고 지체가 될 수밖에 없었던것 아니겠느냐』며 군의 경찰에 대한 고압적인 태도에 분개.

<"심증 갔지만 수사 못해">
오 부장 피습사건을 수사해온 서울 강남 경찰서는 25일 오전 10시쯤 군인 4명이 범인으로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와』하는 함성과 함께 서로 악수를 주고받는 등 온통 잔치분위기.
강남서 한 수관계자는 오전 9시20분쯤 통보를 받았으며 『사실 그동안 우리경찰은 할 일을 다했다. 우리가 초동 수사 단계에서 목격자들을 잘 확보해 범인을 잡은 것 아니냐』며 이제까지 군의 눈치를 보느라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차량을 목격자 이명식씨(55)가 「잘못 보았다」 「군의 공신력 있는 수사결과를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던 그 동안의 태도를 돌변, 강남서가 범인검거의 1등 공신임을 알아달라며 생색내기도.
이에 반해 강광 수사과장 등 일선 수사관계자들은 『사실 그동안 오 부장 사건이 육군정보사 군인들의 짓이라는 심증을 굳혀왔으나 감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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