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끌고 가 국가공격 죄 몰아|감옥 나오니 조국은 전혀 새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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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음은 지난달 29일「아웅·지」장군과 함께 체포됐다 석방된「세인·윈」AP기자가 석방 후 처음 보낸 기사를 요약한 내용이다.
나는 지난 7월29일 한밤중에 일당독재의 하수인인 버마 수사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25일 감옥에서 풀려나 보니 버마는 전혀 새로운 나라가 돼 있었다.
석방되고 나서 종전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을 목격했다
즉, 4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외쳐 대고 있었으며 시위현장에는 예전과 달리 비밀경찰도, 총검을 꽂은 총으로 시위대를 조준하고 있는 군인들도 하나 없었다.
특별 독방에 갇혀 있는 동안 나는 버마를 휩쓸고 있는 시위 사태에 관해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권좌에 오른 지 17일만에「세인·르윈」이 대통령을 물러나야 했다 든 가, 시위군중이 무자비하게 학살 됐 다든 가, 민주주의의 부활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는 등.
당국은 그 날밤 10시 내 집에 난입, 나를 강제로 끌고 갔으며 가족들은 이 같은 사실을 텔렉스를 통해 방콕의 AP지국에 알렸다.
『아빠가 붙잡혀 가서 기사를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아웅·지」와 다른 9명과 함께 따로 가려내져 랑군에서 13km 떨어진 인세인 형무소로 끌려갔다. 거기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각각 분리돼 심문을 받았으며 최고 반역죄에 비교될 만한「국가공격」혐의가 부여됐다.
이 법은 새로 제정된 것이다.
고독과 외부소식, 그리고 개인의 장래·신상문제를 제외하고 감방생활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
조사 관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아웅·지」를 자주 찾아간 것은 취재 때문이며 그는 나의 오랜 친구였다는 것뿐이었다.
감방이 나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나는 1960년 영자신문「더 가디언」지 기자 시절 버마의 자유언론운동에 참여, 1개월 가량 투옥된 적이 있다.
미얀마 국민들은 지난 26년간의 전제적 통치에 대해 이미 충분할 만큼 겪었다고 용감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 25일 감방 문이 열리고 석방되면서 이들 군중들의 시위를 보았다.
나는 군중들에 둘러싸여 귀가가 늦어졌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집에 돌아가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지난 28일동안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있는지 전혀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살아온 것처럼 텔렉스 앞에 앉아 기사 1건을 송고 했다. 【랑군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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