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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잘 풀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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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런 가운데 미 일각에선 '중국 위협론'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중국이 올해 국방예산을 전년 대비 14.7% 늘린 데 대한 불신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상 최대의 대중(對中) 무역적자에서 느끼는 경제적 위협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미 국방부도 중국의 군비 증강을 비난하지만 미국 내 대중 강경론은 실질적으론 지적 재산권 문제를 앞세운 의회나 노동조합이 이끌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이런 '중국 위협론'과는 달리 현실에선 양국 정부의 관계가 갈수록 긴밀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로버트 졸릭 미 국무부 부장관은 중국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라 했고, 이는 그 뒤 미 정부의 공식 외교용어로 자리 잡았다. 다시 말하면 중국이 이미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정치나 경제적으로 이에 걸맞은 일원으로 행동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이를 두고 중국은 "과거 여러 압박 카드로 우리를 견제해 온 미국이 유연한 태도로 전환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20일 정상회담의 의제는 무엇일까. 중국의 최대 관심사는 대만 문제다. 후진타오 정권은 장쩌민(江澤民) 시대와는 다른 대만 정책을 취하고 있다. 장쩌민의 최우선 과제는 항상 대만 문제였지만 후 주석은 대만 정책을 접촉과 교류에 기초한 장기적 통일전략으로 바꿔놓았다. 다시 말해 대만과의 '현상 유지' 정책이다. 장쩌민과 군 당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후진타오는 대만 정책과 관련한 국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을 최대한 이용, 대만 내에서 일고 있는 독립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 미국도 대만의 일방적인 움직임에는 비판적이며, 이 점에서 미.중 두 나라의 견해가 일치한다. 따라서 후진타오는 이번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대만 독립에 반대한다"고 표명할 것을 요구할 게 분명하다.

반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무역마찰을 줄이고 위안화의 개혁을 요구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의 시장개방을 위한 가시적인 조치도 포함돼 있다. 후 주석은 19일 첫 방문지인 시애틀에서 보잉 항공기 80대를 구입했다. 원자력발전소 구입 계획도 이미 결정돼 있다고 한다. 미국은 여기에 더해 대두와 밀가루 등 농산품 구매와 함께 자국 국채의 추가 구입도 요구할 것이다. 중국이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가 된다는 것은 1980년대 일본이 무역마찰 해소를 위해 미국에 강요당한 각종 경제 조정정책을 중국 역시 똑같이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미국은 핵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북한과 이란에 대해 중국이 단호한 입장을 취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각종 금융제재를 강화하고 있으나 중국의 협력 없이는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없다. 후진타오 정권은 이런 면에서 장쩌민 시절보다 미국에 협조적이다. 이란 최대 유전 사업권을 가진 중국을 미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이란 제재에 동참시키는 문제도 이번 회담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미국은 이 밖에 군사증강.에너지.인권.민주화.종교문제 등에 대해서도 중국에 수많은 요구를 할 것이다.

후진타오가 이 수많은 요구에 직면하면서까지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정치에서 확고한 권력기반을 확립해야 하는 후 주석에게 외교권력, 특히 대미외교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고쿠분 료세이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