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운동경기일 뿐|박군배<체육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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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 여름 더위가 한풀 꺾이면 곧 시작될 것이 그토록 오랜 세월 소란을 피워왔던 서울올림픽이다.
그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이젠 차분히 마무리정리를 해야할 시점이지만 아직도 혼돈과 유동의 분위기가 꽤 거세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아쉬움이 바로 올림픽에 대한 일부의 굴절된 시각과 정치적 과열이다.
한편에선 대회분위기가 일지 않는다고 여기는 듯 하나 사실 서울올림픽은 거의 출생 때부터 줄곧 과열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81년 바덴바덴총회가 제24회 하계올림피아드의 서울개최를 결의하는 순간, 우리 한국민은 모두 환성을 질렀지만 그 전후해서 한순간 놀람과 의외, 당황과 의심 등이 교차되는 불안스런 기분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결정은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의 상식」에 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총회에 참석하여 「서울」에 찬표를 던진 어느 IOC위원은 훗날 회고록에서 바덴바덴의 결의를 『IOC역사상 유례 드문 에러(실수)였다』고 기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서울올림픽의 순항과 성공의 전망이 상당히 밝은 요즈음 그는 골프를 하다가 잘못 쳐 빗나간 공이 언덕 위의 나무를 튕긴 후 홀인원이 되는 해프닝을 상상하면서 파안대소할지도 모른다.
IOC위원이란 국제사회의 자유인이다. 공산국가나 일부 후진국의 IOC위원일 경우 예외적인 현상이었지만 이들의 국제올림픽관계 활동엔 정부로부터 훈령을 받지 않는 것이 통례다.
바덴바덴에서의 IOC위원들은 서울 측 유치운동 사절단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노력에 매수되고(반드시 금전의 수수가 있었다는 뜻이 아님), 당초 유럽의 귀족들에 지배되어온 보수적인 IOC의 전통과 체질에 대한 제3세계 쪽의 반동적 기운이 움트고 있었으며, 유치경쟁상대인 일본 나고야 측이 지나친 낙관으로 방심했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이것이 서울에 행운을 안겨준 주요 원인들이다.
결코 그때의 IOC위원들 분위기가 『서울에서의 올림픽개최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고 동서화합과 해빙을 이룩한다』는 원대한 정치적 포부나 계산으로 팽배해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 많은 참관자들의 증언이다.
우리측(정부포함)은 어땠는가. 소풍기분으로 물을 찾은 낚시 초보자가 월척을 낚아 올린 격이었다.
나는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제5공화국의 주도세력이 당초부터 정권적 차원에서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착상을 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비유를 한다면 낙선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먼 훗날을 기약하면서 출마를 결행한 정치지망생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고 박종규씨는 『아시안게임유치를 위한 양동 작전이었다』고 말했다.) 역사가 매우 우습게 엮어진 셈이었다.
이와 같이 기대 밖의 횡재를 한 서울과 대한민국은 과열할 수밖에 없었다.
정권담당자들은 틈만 나면 생색을 내고 싶어하여 올림픽의 성공과 그 후의 「나라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강조하여 민심의 순화에 원용했다. 행정기관은 예산 따기에 흔히 올림픽을 핑계댔다. 경제계도 올림픽특수를 노려 내부적으로는 치열하고 긴장된 경쟁을 벌였다. 사업판단을 잘못한 어느 광고관계 사업가는 자살까지 했고, 특수아파트분양으로 서울 영동일대가 몇 달을 떠들썩했다.
그리고 반정부세력은 최대한으로 올림픽을 평가절하하고 외면함으로써 올림픽을 정치와 연관시키는 점에서는 정부·여당 쪽이나 평양 쪽과 다름없었다. 이 같은 양상은 올림픽이 이 땅에 와서 부당하게 시달림을 당하는 것이며, 정치적 오염의 극치를 이루는 것으로 올림픽역사가 암울한 경지에 빠져들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최근 각 정당은 올림픽의 원만한 개최에 의기투합하여 대회가 끝날 때까지 정쟁을 중단키로 했다한다.
이는 좋은 현상이나 사실은 올림픽이 정치에 이용되고 있는 또 하나의 예를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이란 무엇인가. 그 실체는 한갖 운동경기대회일 뿐이다.
기원전 8세기에 시작된 고대올림픽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올림픽은 그 「숭고한 가치와 높은 이상」에 관해 여러 가지 수사로 칭송·미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쿠베르탱」 남작 등 근대올림픽 창설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의 올림피언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스포츠를 애호하는 소박한 인간들이 반 스포츠적 위협으로부터 올림픽을 보호하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따라서 정치와 상업적 세력에 의해 각색되고 비대해진 현대올림픽에 대해 환상적 기대를 갖지 않도록 침착해야 한다.
역대올림픽이 그 개최국에 남긴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대체로 실망스러운 해답만 나올 것이다. 일본경제도약이 동경올림픽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며 뮌헨올림픽이 동·서독의 장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중국과 동구국가선수단이 서울에 오고 이들 국가와 교류관계가 타진되고 있는 것은 등소평과 「고르바초프」의 개방 및 페레스 트로이카 정책에 따른 국제정세 변화 때문이지 올림픽이 낳은 묘수가 아니다.
대북 관계에 있어 민족적인 숙제를 올림픽에 연결시키려는 발상은 현실적이 못되며 그것은 올림픽이 미치기 어려운 높은 차원의 명제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의 참모습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모여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신체적 능력을 즐기면서 웃음을 나누는 것에 한한다. 서울올림픽이 변질되지 않은, 이러한 「참 올림픽」으로서 차분히 막을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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