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물정을 아는 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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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31면

[책 속으로] 요조의 책잡힌 삶

새로운 미래, 어떻게 번성할 것인가

새로운 미래, 어떻게 번성할 것인가

“정말 이거면 돼요, 그만 주문해도 괜찮아요.”

어느 일본식 주점에서 데이트하던 상대는 정말 괜찮다고 손사래를 열심히 치는 나를 무시하고 안주를 기어이 두 개나 더 시켰다. 그리고는 얼마 되지도 않아서 좀 느끼하지 않냐며 마음대로 타코와사비를 추가로 주문했다. 테이블이 안주로 가득 찼고 나는 새로 나온 안주들에 젓가락을 대기도 전에 이미 배가 불러버렸다.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먹어요. 이거 다 음식쓰레기 되는 건데. 손도 안 댄 음식들 보면 직원들도 속상하겠어요.”

내가 말하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과연 그럴까? 이 사람들은 그래도 많이 파는 걸 더 좋아할걸.”

우리는 둘 다 사장의 주머니 사정과 음식쓰레기를 걱정하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돈보다도 버려지는 음식 쪽을 먼저 생각한 내 쪽이 어쩐지 더 철부지처럼 여겨졌다.

얼마 전 비슷한 상황이 한 번 더 있었다.

새로운 아이폰이 출시될 때마다 서둘러 갈아타는 친구가 있다. 아이폰 X의 신기능을 신이 나서 자랑하는 친구를 물끄러미 보다가 오래전부터 정말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을 물어보았다.

“근데…우리 아이폰 3G 정도로도 충분했지 않아?”

SSS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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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폰 3G만으로도 핸드폰이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한 것 같다고, 아이폰 시리즈가 이제 그만 개발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계의 수명이 다들 너무 짧아지고 있고, 버려지는 기계도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친구는 멍청이 보듯 나를 보면서 그럼 애플 직원들은 뭐 먹고 사냐고 물었다. 이렇게 기계든 뭐든 발전을 해야 사람들도 할 일이 계속 생기고, 막말로 세상이 이렇게 진화해서 나쁠 게 있느냐 물었을 때 나는 또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답답하고 멍청한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왜 TV가 모공이 다 보일 만큼 계속해서 선명해져야만 하는지, 왜 냉장고가 더 커져야 하는지, 왜 듣고 싶은 음악과 보고 싶은 채널을 직접 찾지 않고 인공지능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왜 우리는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지.

영국의 작가이자 디자이너, 행사 기획자이기도 한 존 타카라는 『새로운 미래, 어떻게 번성할 것인가』(안그라픽스)에서 새로운 경제관념을 제시한다. ‘소비의 경제에서 공생의 경제로’라는 말이 부제로 적혀있는 이 책은 무한한 성장만을 위한 경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더라도 여러 번 뜨끔할지 모른다. 바로 내가 그랬다. 예컨대 나는 한정적인 에너지 자원에 관해서라면 어련히 미래에는 재생 에너지로 살아가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그 ‘녹색’에너지 시스템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화석에너지와 돈이 필요하다는 데까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건물을 짓든지 해서 유용하게 활용해야만 할 것 같은 아무것도 없는 땅들은 그냥 잉여롭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대 생태계의 자정에 분명하게 기여하고 있다는 말은 제주에 살면서 여기저기서 보는, 소위 사람들이 ‘노는 땅’이라고 말하는 허허벌판들을 다시 보게 해주었다. 에너지와 토지에 대한 얘기뿐만 아니라 물과 주거문제, 먹을거리, 입을 것, 이동 수단, 돌봄과 화폐까지 전방위적으로 다루며 다양한 나라들에서 어떻게 작지만 분명한 변화들을 이끌어내고 있는지 소개한다. (그중에 한국에 대한 소개가 잠깐 나오는데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의 유일한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얼마 전에는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 쓸 ‘SSSSL’이라는 매거진이 입고되었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만든 독립출판물이다. 전 세계적으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차근차근 실천할 수 있는지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고 있다.

바로 며칠 전 중국의 재활용 쓰레기 수입 중지 통보에 미국과 유럽에서 쓰레기 처리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앞으로의 ‘세상 물정 모르는’ 기준은 지금까지와는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요조 뮤지션 chaegbangmusa@gmail.com
뮤지션. 제주의 책방 ‘책방무사’ 대표. 『요조 기타 등등』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을 썼다.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장강명 작가와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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