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이성태 새 한국은행 총재 첫 마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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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근 기자]

"통화정책은 적시성(適時性)이 중요하다. 필요할 때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겠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3일 취임 일성이다. 경제의 중장기 흐름을 앞서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콜금리를 올리거나 내려야 한다고 판단될 때는 실기(失機)하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은은 콜금리 목표치 조정을 앞두고 정부와 정치권 등의 압력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또 주가 급락 등을 의식해 스스로 미적거리다 실기한 적도 적지 않았다.

이 총재는 부동산 문제도 한은의 주된 관심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장과의 대화를 강조했다. 예측가능한 정책을 펼치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 총재의 취임사와 기자간담회 답변을 통해 향후 그의 행보를 가늠해 본다.

실기하지 않는 통화정책=이 총재는 "통화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야겠지만, 적시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굳이 사례를 들지 않겠지만 외환위기 이후 8년간 통화 사정을 돌이켜 보면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술회했다. 때를 놓친 적이 많았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나를) 소위 매파(금리인상론자)라고들 하는데 경제의 추세가 바뀔 때는 태도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제 상황에 따라 금리를 올려야 할 때는 올리지만, 상황이 바뀌면 즉각 내리기도 하는 유연한 통화정책을 취하겠다는 의미다.

부동산시장도 관심사=한은은 그동안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물가라는 전제 아래 경기 상황과 자금사정, 환율.주식.부동산 등 모든 요소를 고루 감안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이 총재는 "부동산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경제의 핵심 사안 중 하나로 떠올랐고 전 세계적인 통화정책 기조와 관련돼 있다"며 "2005년 말부터 다시 일어나고 있는 부동산시장의 불안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가지고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가안정이 한은 통화정책의 목표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 생각하며, 통화정책이 잘못됐을 때 그 징조가 부동산과 같은 다른 부분으로 파급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필요하면 부동산시장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켜보는 조직 신설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정부·시장과의 대화 중시=이 총재는 한은 총재의 영역 밖에 있는 경제운용시스템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소신을 밝혔다. 그는 "그동안 비교우위를 누려 온 제조업 분야에서는 후발개도국의 추격이 빨라지고 있는 반면 신기술 분야와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은 여전히 선진국에 뒤진다"며 "규제와 보호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운용이나 기업경영 방식은 더 이상 통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의 이런 성향과 뚝심을 감안할 때 앞으로 한은 내부에 개혁의 바람이 몰아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총재는 "한은의 독립성을 한층 강화하되 조직체계를 재점검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며 "중앙은행과 시장의 관계도 상당히 달라진 만큼 시장과의 대화도 중시하겠다"고 밝혔다.

김동호 기자 <dongho@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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