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시인 이용악 시전집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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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털보네 간곳은 아모도 모른다/ …/더러는 오라애령쪽으로 갔으리라고/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이웃 늙은이들은/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낡은집』중에서).
30년대「진정한 순수시인」으로 불리는 월북시인 이용악의 전시집이 38년만에 나왔다.「당대의 시재」로 문명을 날렸으면서도 지금까지 그의 시가 규제되어 온것은 그가 6.25당시 고향을 찾아 월북했기 때문이며 그런점에서 이용악은 지난3월 해금된 정지용·김기림못지않은 분단이데올로기의 대표적인 희생자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해말 재북시인 백석의 시전집을 출간한바있는 창작과 비평사는 유실된 문학사복원작업의 일환으로 아직까지 정부가 공식해금하지않은 이용악의 시전집출간을 강행했다.
문학평론가 윤영천씨(인하대교수)가 엮은 이 전집은『분수령』(37년)『낡은집』(38년)『오랑캐꽃』(47년)『이용악집』(39년)등 4권의 시집에 실린 작품과 새로 찾아낸 15편의 시등 모두 97편의 시와 10편의 산문으로 꾸며졌다.
번득이는 감각적 이미지로 유명한 그의 시세계는 30년대 문단을 휩쓸었던 모더니즘의 영향권아래 있었으나 그의 시가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가 일제강점하에서 고통받는 유이민들의 집단적 비극과 그 극복을 노래한 민족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1914년 함북경성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의 극심한 식민지수탈을 견디다 못해 만주나 시베리아로 떠나는 유랑민들의 처절한 삶을 바라보며, 그 자신 찢어질듯이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짐짝처럼 이민열차에 실려「애통의 강」을 건너는 동포들의 삶은 곧「당대 민족모순의 핵심」이었고 이같은 인식은 그가 막노동을하며 다녔던 일본 상지대유학시절 펴낸 첫시집『분수령』부터나타났다.
윤영천씨는『이용악에 관한 우리의 논의는 결국 오늘날의 분단현실을 분명히 인식, 통일문학을 지향하는데 귀결된다』며『이는 거대한 정치적난민으로 대치중인 남북한분단 현상이 일제강점기유이민 현상과 다를바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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