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프랑스는 노조의 나라" 비아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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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뉴욕 타임스는 29일 '노조의 나라(State of Unions)'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선 노조가 여전히 힘을 쥐고 있어 전국적인 파업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나치와 협력한 극우파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몰락하면서 공산당의 발언권이 커지고 사회 전반이 좌경화됐다"며 "프랑스와 비슷한 19세기 말에 노동운동이 태동했지만 2차 대전 이후 우경화된 미국과는 이 점에서 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CNN은 28일 프랑스 전역에서 동시에 벌어진 대규모 시위를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에 비유하기도 했다. 미 언론들은 지난해 말 3주 동안 계속된 소외지역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의 소요사태 때에도 '불타는 파리' 등의 자극적인 제목을 뽑으며 폭력 장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프랑스가 '시위와 파업의 나라'가 돼버렸다. 26세 미만 젊은이들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게 한 최초고용계약(CPE)이 불을 댕긴 이번 시위 사태는 벌써 두 달을 끌고 있다. 학생들과 노동계는 다음달 4일 또 한 번의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미국 등 다른 서구국가보다 프랑스에서 파업과 시위가 유독 자주 벌어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프랑스 헌법이 파업권을 확실하게 보장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해가 별로 없다. 파업 일수만큼 급료를 못 받는 게 전부다. 국민도 파업을 당연한 권리행사로 여기고 불편하더라도 묵묵히 참아준다.

뉴욕 타임스는 29일 "미국에서 파업을 하면 일자리를 잃을 위험이 있어 노동자들이 신중하지만, 프랑스에선 헌법 때문에 그럴 걱정이 없어 파업이 잦다"고 꼬집었다. 이 신문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뒤집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낭만적 유산 덕분에 대중도 파업에 호의적이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독특한 위상과 역사적 배경도 파업을 쉽게 한다. 8%에 불과한 낮은 노조가입률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정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노조는 프랑스에서 대중을 세력화해 정부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사회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를 (대정부 투쟁의 불을 지피는) '점화 플러그'라 부르기도 한다. 모든 노동자가 매년 적어도 5주의 휴가를 즐기고 주당 근로시간을 세계 최저인 35시간으로 못박아 놓은 것도 이러한 노조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조의 막강한 힘 때문에 프랑스 사회의 개혁은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고비용 저효율에 시달리는 의료.연금 등의 복지시스템은 프랑스 사회의 해묵은 숙제로 남아 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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