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아쉬움 남은 '해임 건의' 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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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번 국회의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 건의는 대통령의 수용 여부가 주목을 끌고 있다는 점에서 유별나다. 우리 헌정 사상 '해임건의'란 이름의 국무위원 해임안 가결은 이번이 네번째다.

그러나 그동안은 대통령의 수용 여부가 문제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유독 이번엔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는 헌법의 해당 조문이 대통령을 기속하는 것이 아니니 거부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새삼스럽게 청와대 쪽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 헌법 조문의 문리적 해석을 놓고는 헌법학자들 간에도 학문적으로는 견해가 엇갈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헌정사와 특별히 가결요건이 엄격한 해당 헌법 조문을 살펴보면 대통령의 거부를 쉽사리 입 밖에 낼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 헌법에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 대한 국회의 불신임 내지 해임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52년 제1차 개헌(발췌개헌) 때였다. 그 후 개헌이 거듭되면서 정부의 국회해산권이 인정된 제2공화국.유신.제5공화국 헌법에선 국회의 각료해임결의권이, 국회해산권이 없어진 제3공화국 헌법과 현행 헌법에선 해임건의권이 규정됐다.

그러나 각료해임건의의 경우에도 헌법은 재적 과반수 출석에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하는 일반적인 국회 의결정족수와는 달리 재적 3분의1 이상의 발의와 재적 과반수 찬성이란 엄격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신중한 제안과 확실한 다수의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은 비록 해임건의지만 이렇게 분명한 국회의 각료 해임요구 의사를 법적인 하자가 없는 한 역대 대통령들도 거부할 수 없었다.

공화당 정권에선 1969년 4월 8일 권오병 문교부 장관, 1971년 10월 2일 오치성 내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공화당이 다수를 점한 국회에서 야당이 제안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데는 여당의원들의 조직적 동조가 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당명을 어긴 여당의원에 대해선 제명, 중앙정보부 연행 조사, 의원직 박탈 및 당원권 정지 등 미증유의 가혹한 조치를 취했으나 국회의 의사는 존중해 해당 장관들을 모두 해임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지지난해 9월 3일 자신의 대북 햇볕정책 전도사라던 임동원 통일부 장관에 대해 국회의 해임건의가 가결되자 즉각 이를 받아들였다. 다시 청와대특보로 기용할 만큼 그를 의지했는데도 말이다.

金장관 해임건의에 대한 중앙일보 보도는 스케치, 관련 당사자들의 입장 전달에 치중했을 뿐 깊은 천착과 방향 제시가 부족했던 느낌이다.

특히 3일자 4면 해설기사 가운데 과거 '4건의 장관 해임 관련 가결 중 3건은 87년 이전의 구속력을 지닌 결의안'이라는 설명은 사실관계마저 틀렸다. 3건 중 자유당 때 1건만 불신임결의였고, 공화당 때 2건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해임건의였다.

전.현직 검사들의 MBC상대 소송에 대한 2일 대법원1부의 판결은 우리나라 언론자유에 이정표적인 의미를 지닌 중요한 판결이다.

재판부는 "공직자의 도덕성, 청렴성, 업무처리의 정당성 여부는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임을 감안하면 이런 감시와 비판기능은 그것이 '악의적인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돼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이는 공직자와 관련된 사회적 관심사안에 대해선 악의만 없다면 폭넓게 보도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실로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뉴욕 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판결에 비견할 만하다.

그 판결은 공적 인물(public figure)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없는 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으로 그 이후 미국의 언론 보도 자유의 폭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언론 보도에 대한 도전과 압력이 강화되고 있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이런 중요한 판결에 대해 언론의 조명이 부족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3일자 중앙일보는 6면 2단기사로 판결에 대한 간단한 사실 보도에 그쳤으나 4일자 사설에서 그 의미를 잘 짚었다.

그 밖에 8월 27일자 중앙일보 18면 대하소설 '삼한지'10권의 완간을 소개하는 박스기사는 막상 소설의 저자 이름이 빠졌다. 반면 지난 2주간은 '새 감사원장 윤성식씨 유력' '하버드대 한국학 박사 8명 배출' 등 단독 기사도 풍성했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