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이데올로기」의 청산|이대근|<성대교수·경제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때는 1949년 8월, 한반도 남단의 해군기지 진해 앞바다에서는 당시 아사아의 두 거물정치지도자 이승만과 장개석이 마주앉았다. 그들은 육지에서가 아니라 바다위의 배속에서 만나는「함상회의」를 가졌던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대만으로 쫓겨간 신세라고 하더라도 중국 천황이라고 한 장개석이 한국을 정식으로 방문할 수 없었던데서 온 편법이었다. 전통적으로 중국 천황은 변방의「오랑캐 나라」를 결코 방문치 않는다.
한국방문은 강력한 반대여론에 부닥치고, 그 결과 궁색하게 짜낸 아이디어가 그렇다면 한국 육지에는 발을 딛지 않고 바다 가운데서 이를 만나고 오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궁상맞기 짝이없는 타협의 산물이었다고 한다.
아뭏든 3일간에 걸쳐 극비에 부쳐진 이 궁상맞은 회담에서 두 거두는 과연 무엇을 논의했을까.
과문한 탓으로 필자는 이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 당시의 급변하는 동북아정세에 비추어 아마도 동경「맥아더」사령부의 주선 아래 한국·대만·필리핀·일본등지를 묶는 태평양 반공동맹 같은 것을 만들고자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것의 성공여부는 고사하고 이 회담을 통해서 우리에게 남겨진 귀중한 사실의 하나가 있단다. 그것은 모택동이 지배하게 된 중국대륙을 중국이라고 부르질 않고 중공으로 부르기로 한 것이란다.
즉 중국공산당이 대륙을 일시적으로 장악하고 있을뿐 중국의 정통성은 어디까지나 대만의 장개석정권에 있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단다.
중공! 중국근대사의 관점에서면 그것은 1920년대초에 결성되는 중국공산당의 약칭이다.
1930년대 들어 항일구국전선이 펼쳐질때 중국에는 두개의 정치권력이 있었다. 장개석이 이끄는 국부군과 모택동이 이끄는 중공군이 그것이다. 때에 따라 그들은 싸움하기도 하고 합작하기도 했다.「국·공합작」은 바로 이들간의 항일연합전선의 구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이 쫓겨간 후 국·공간에는 내전이 벌어지고 결과는 공쪽의 승리로 돌아가 같은해 10월 모에 의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이 선포된다.
이즈음 장은 아마도 복받치는 설움을 안고 모든 중화의 자존심을 팽개친 채 한국의 이를 찾았을 것이리라.
그후 멀지않아 한국전쟁이 터지고 전쟁의 양상은 미·중전으로 바뀌면서「맥아더」는 대만군의 한국참전을 고려하는등 그야말로 적대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중국을 중공으로, 중국군대를 중공군으로, 또 대만을 자유중국으로 부르는 호칭법이 확고히 자리잡았다.
어디 그뿐인가. 대학교수가 지은 책이름이「중공·중공인·중공경제…」등으로, 대학원생들의 학위논문 또한「중공기업의…」「중공문학의…」등으로 정말 웃지못할 표현들이 너무나 많았다. 중공인이라! 어디 중국공산당 남녀당원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조공인·일공인도 세상에 태어나겠구먼!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말의 유희요, 지적 농간이다.
중공! 한마디로 그것은 분단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진실을 감추고 사실을 왜곡하여 인간에게 허위의식을 강요하는, 그리하여 우리사회를 정신적으로 병들게 한 분단 이데올로기의 소산이다. 중국대륙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속에서 중국인이 중국옷을 입고 중국음식을 먹으며 중국말과 중국글을 사용하면서 분명히 살고 있는데, 그것도 세계인구의 무려 4분의 1이나 차지하고 살고있는데, 또 세계 모든 나라가 그러한 중국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데 왜 유독 한국만 그것을 인정치않겠다는 것인가.
이에 어느 중국문제전문가는 일찌기 그의 책이름을「8억인과의 대화」,「대륙중국의…」등으로 표기하여 허깨비가 판치는 분단이데올로기에 용감하게 항거했던 일은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에 새롭다.
최근 들리는 바로는 우리네 재벌기업들이 중국행 버스를 놓칠세라 앞다투어 그나라를 드나든다고 한다. 중국은 또한 서울올림픽에의 참가를 일찌감치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의 중국에 대한 호칭은 여전히 중공이다.
분단 이데올로기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가를 실감케한다.
필자는 지난 대통령선거때 여당의 노태우후보에게 한차례 박수를 친 일이 있다. 그가 선거유세중에 중화인민공화국 (약칭중국) 이란 말을 정치지도자로서는 최초로 썼기 때문이다.
분단이데올로기는 냉전이데올로기의 파생물이라 할 수 있다. 이 두가지가 모두 처절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사회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분단40년간 한국사회를 반쪼가리의 절름발이 사회로 병들게했다. 분단 체제하에서 중공말고도 또 하나 문제삼아야 할 용어가 있다. 북괴란 표현이 그것이다.
북한이 오늘날 주체사상을 앞세우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다가, 또 야당총재가 북한의 외채까지 갚아주자고 주장하고 나서는 이 마당에 논리적으로 그러한 표현이 통용될 법이나 할말인가.
바야흐로 우리는 지금 민주화의 시대, 또는 민족자존의 시대에 들어선다고들 한다. 이러한 시대는 어떻게 열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존재하는 사물을 존재하는 그대로 보아줄수 있는 우리네 인식의 대전환으로부터 열어야할 것이다.
고쳐말하면 지난 40여년간 온통 우리들에게 허위의식을 강요하고 우리네 참된 삶의 지향을 파괴해온 분단이데올로기의 과감한 청산으로부터 그것은 출발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